짧은 삶, 잠깐이라도 행복하면 안되겠니
나는 캣맘이다.
우리 엄마도 캣맘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다행히 강아지나 고양이, 혹은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의 수가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 길고양이에게 호의적이다. 간혹 잘 씻어놓은 밥그릇에 먹다 남은 생선 뼈가 들어있거나 (보태주는 성의는 고마운데.. 안먹어요...) 작은 쇼핑백에 몇 개의 캔 간식이 담겨 집 앞에 산타할배 선물처럼 놓여있기도 한다.
가끔 이슈가 되는 끔찍한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건물 주차장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들고, 너덜너덜하게 온갖 비니루로 비바람을 막아 보기도 지저분하고, 심지어 거기 먹을 거 많다는 소문이 났는지 동네 고양이들이 많이 오가 가끔 밤이면 씨끄러운데다가 묘하게 고양이 분변 냄새까지 스물스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엄마의 캣맘짓[!]을 좋게 바라봐는 건물주와 동네 주민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 생기곤 한다. 사실 내가 건물주라고 해도 주차장에서 암모니아 냄새나면 좀 싫을 것 같은데.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한참 이런 논쟁이 있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 그들의 야생성이 떨어져, 돌봐주는 사람이 사라지면 굶어 죽고 만다고. 무책임하다고.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이건 그저 지나가는 캣맘 1,2의 아주 편협한 시각이다.
어차피 길고양이들이 놓인 환경은 '야생'이 아니다. 시냇물 졸졸 흐르고, 크고 작은 설치류들이 돌아다니고 가끔 통통하게 살찐 참새도 잡고 그래야 야생이지. 저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뜨끈뜨끈하고 독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 하수구의 고인 물,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악취와 파리떼뿐인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경우 평균 수명은 15~18년, 요즘은 더 길게 보기도 한다.
그런데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채 3년이 안 되니, 사람으로 치자면 100세 시대를 맞아 꽃 다운 스무 살에 요절한다는 거다. 그것도 평생 배앓이와 굶주림, 목마름에 시달리다가.
그 짧고 퍽퍽한 삶 속에, 단 한 번이면 어떻고 몇 달이면 어떤가.
오독오독 씹히는 눅눅하지 않은 사료와 싱싱한 비린내가 솔솔 풍기는 가다랑어 캔, 그리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모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서 나는 오늘도 대포장 사료를 주문하고, 저렴한 간식 캔을 24개들이 박스로 주문한다. 간혹 동물병원에서 얻어 오는 구충제나 면역제제 등을 타 먹이는 정도 이외에, 내가 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평생 책임지지 못 할 거면서 무책임하다고?
그래 나 무책임하다. 내 인생 하나도 평생이 자신 없는데 하물며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어떤 무게인 지 당신은 알고 얘기하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외로우니까, 혹은 귀여우니까 '구매' 했다가 버려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내 집에 있는 세 마리의 털덩어리(님)들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고는 아니라고 할 지라도.
세상 구제를 다 할 수 없다. 밥 먹으러 오는 아이들을 다 집에 들일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가방에 버릇처럼 넣어 다니는 사료 한 줌,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앞에 대령하는 먹거리로 미처 보듬지 못한 동그마한 머리통들이 한 끼 배부르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자꾸자꾸 생기면 그것으로 어딘가에 반 보 정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지나가던 고양이가 비비탄 총을 맞거나 발에 채이지 않고,
주차장 한 켠의 볕 잘 드는 곳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밤이면 보석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담벼락 위를 넘어다니는 살랑살랑한 꼬리 끝자락.
그들의 짧고 고단한 삶에 이 정도의 낭만은 있어도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