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ggy Park Jul 20. 2016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아주 편협한 시선

짧은 삶, 잠깐이라도 행복하면 안되겠니

나는 캣맘이다.


우리 엄마도 캣맘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다행히 강아지나 고양이, 혹은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의 수가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 길고양이에게 호의적이다. 간혹 잘 씻어놓은 밥그릇에 먹다 남은 생선 뼈가 들어있거나 (보태주는 성의는 고마운데.. 안먹어요...) 작은 쇼핑백에 몇 개의 캔 간식이 담겨 집 앞에 산타할배 선물처럼 놓여있기도 한다. 


가끔 이슈가 되는 끔찍한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건물 주차장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들고, 너덜너덜하게 온갖 비니루로 비바람을 막아 보기도 지저분하고, 심지어 거기 먹을 거 많다는 소문이 났는지 동네 고양이들이 많이 오가 가끔 밤이면 씨끄러운데다가 묘하게 고양이 분변 냄새까지 스물스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엄마의 캣맘짓[!]을 좋게 바라봐는 건물주와 동네 주민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 생기곤 한다. 사실 내가 건물주라고 해도 주차장에서 암모니아 냄새나면 좀 싫을 것 같은데.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한참 이런 논쟁이 있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 그들의 야생성이 떨어져, 돌봐주는 사람이 사라지면 굶어 죽고 만다고. 무책임하다고.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이건 그저 지나가는 캣맘 1,2의 아주 편협한 시각이다.


어차피 길고양이들이 놓인 환경은 '야생'이 아니다. 시냇물 졸졸 흐르고, 크고 작은 설치류들이 돌아다니고 가끔 통통하게 살찐 참새도 잡고 그래야 야생이지. 저 아이들이 처한 환경은 뜨끈뜨끈하고 독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 하수구의 고인 물,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악취와 파리떼뿐인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경우 평균 수명은 15~18년, 요즘은 더 길게 보기도 한다.

그런데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채 3년이 안 되니, 사람으로 치자면 100세 시대를 맞아 꽃 다운 스무 살에 요절한다는 거다. 그것도 평생 배앓이와 굶주림, 목마름에 시달리다가.


그 짧고 퍽퍽한 삶 속에, 단 한 번이면 어떻고 몇 달이면 어떤가.

오독오독 씹히는 눅눅하지 않은 사료와 싱싱한 비린내가 솔솔 풍기는 가다랑어 캔, 그리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모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서 나는 오늘도 대포장 사료를 주문하고, 저렴한 간식 캔을 24개들이 박스로 주문한다. 간혹 동물병원에서 얻어 오는 구충제나 면역제제 등을 타 먹이는 정도 이외에, 내가 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평생 책임지지 못 할 거면서 무책임하다고?

그래 나 무책임하다. 내 인생 하나도 평생이 자신 없는데 하물며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어떤 무게인 지 당신은 알고 얘기하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외로우니까, 혹은 귀여우니까 '구매' 했다가 버려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내 집에 있는 세 마리의 털덩어리(님)들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고는 아니라고 할 지라도. 


세상 구제를 다 할 수 없다. 밥 먹으러 오는 아이들을 다 집에 들일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가방에 버릇처럼 넣어 다니는 사료 한 줌,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앞에 대령하는 먹거리로 미처 보듬지 못한 동그마한 머리통들이 한 끼 배부르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자꾸자꾸 생기면 그것으로 어딘가에 반 보 정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지나가던 고양이가 비비탄 총을 맞거나 발에 채이지 않고, 

주차장 한 켠의 볕 잘 드는 곳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밤이면 보석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담벼락 위를 넘어다니는 살랑살랑한 꼬리 끝자락.


그들의 짧고 고단한 삶에 이 정도의 낭만은 있어도 괜찮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