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스키스 컴백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환영사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런 거다.
16년 전, 나는 지독하게도 어린 사랑을 했더란다. 처음으로 내 의지로 선택했고, 내 십대를 온전히 다 갖다 바친 그런 첫사랑. 아무것도 몰랐고 그만큼 무모할 수 있었다. 계산같은 걸 할 틈이 없게 나는 몸마음간쓸개허파에통장까지 다 쓸어다 바쳤더란다. 그 목소리 한 번 듣자고, 왔어? 그 아는 척 해주는 인사 한 번 듣자고 수업을 째고, 날밤을 새고, 취향도 참 더럽게 까다로운 그를 위해 없는 용돈을 탈탈 털어 음료수 하나라도 사다바치면서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했던 열렬한 첫사랑.
그리고 뜬금없는 이별'통보'를 받았다.
붙잡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저 혼자만 쿨하게 깔끔히.
마지막 노래는 하필이면 너무도 흔한 단어여서, 영어 시간에 good bye 하는 지문만 나와도 엉엉 울었다. 아주 그냥 자지러졌다. 노랑색이라면 포스트잇도 형광펜도 다 끔찍했다. 그냥 보면 눈물부터 뚝뚝 떨어졌다. 이해가 될 리 없었다. 이러저러하다는 설명은커녕 구차한 변명이나 핑계한마디 없는 이별이었으니까. 엄한 리포터의 차 한대를 아작냈고, 길가의 개나리를 다 뽑아 태워죽이고 싶었다. 대체 강남땅엔 개나리가 왜 그렇게 개같이 많은지.
그렇게 내 첫사랑은 끝이 났다. 시간이 약인지 사람이 약인지, 문득 그 작별을 떠올리면 아직도 속에서 울컥 벌건 게 치받치지만 나는 다른 오빠들을 찾았고, 가끔은 동갑이기도 했고 심지어 연하(!)의 오빠도 만났다. 빠질은 청승이라는 모토 하나로 또 열렬히 구애하고, 적당히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니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첫사랑은 여전히 아픈 노랑이었다.
젝스키스 컴백.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고 코웃음을 쳤다. 실시간으로 검색어가 뜨고,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빠질은 몸빵이라 했던가, 사고가 정지된 머리와 달리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퇴근길 빨간 버스를 잡아타고 상암으로 내달렸다. 날은 갑자기 궂었고, 옷은 얇았고, 나는 감기가 심했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짐승처럼 끄억끄억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전혀 입력이 안 됐다. 근데 내 첫사랑이, 기억하는 그 모습으로 - 맘고생은 너도 했는데 왜 우리만 늙어요 오빠 - 멋적게 웃고있었다. 좋지 않은 사건사고에 휘말리면서 퀭하던 모습은 또 나만의 착각이었나, 머쓱하게 코 끝을 매만지고 한 쪽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는 사람은 분명 내 오빠였다. 내 오빠, 내 오빠들, 내 지랄맞고 빌어먹을 첫사랑.
그 오열과 혼돈 속에서 내 오빠는 참도 뻔뻔하기 그지없게 - 이제와서 말하지만 그 사람은 원래 성격이 좀 그모양이다. 남한테 피해주는 건 없는데 엄청 지멋대로야. - 이따위 멘트를 날렸다.
"노랭이들아, 우리 이제 다신 헤어지지 말자"
문자 그대로 짜게 식었다. 개떨듯 떨리던 몸뚱아리가 진동을 멈췄던 것 같다. 늦게 도착해서 멀리 앉아있길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사람이 얼굴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개떡같은 표정이 되었었을 것이다. 아니 씨발 지금 이게 무슨 거지 발싸개같은 소리야.
아니, 우린 이미 16년전에 헤어졌어요.
너네가 버리고 갔잖아. 당신들이 나몰라라 팽하고 튀었잖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그 당시의 '어른의 사정'따위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깜냥도 아니었거니와, 이해를 차치하고 설명이라도 해 준 적 있냔 말이야. 왜 그렇게 도망치듯 떠났는지. 남겨질 내가-우리가- 얼마나 상처받을지, 얼마나 힘들지 그딴 건 생각이나 해 본 적 있었을까. 당시엔 갓 스물즈음, 그렇게 어리던 오빠들은 아마 자신들의 상처를 건사하기도 힘에 겨웠을 거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근데 씨발 머리로 이해하는 거랑은 다르잖아.
간신히 그 지옥같은 첫사랑의 마지막에서 벗어나 나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16년전 날 버리고 홀연히 사라진 첫사랑이 나타나 '그땐 사정이 있었어 고의가 아니었어 나도 그러고싶지 않았어 이제 떠나지 않을게 우리 다신 헤어지지 말자.'
뭐라는거야 이 개자식아!!! 우린 이미 16년전에 헤어졌다고!!!!! 니가 나 버리고 갔잖아!!!! 뭘 헤어지지 마!!! 나 지금 남친있거든?!?!?!?!
언제나 그렇듯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날이 왔다.
젝스키스 컴백 콘서트 - YELLOW NOTE
눈물없이는 못 볼 이틀간의 컴백콘 후기는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