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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ggy Park Oct 12. 2017

변화를 싫어하는 자

남 핑계는 대지말자

                                                                                                                                                                                                                                                                                                                                                                                                                                                                                                                                                       

익숙한 게 좋다. 신식 문물에 선뜻 손이 갈 때는, 그것이 나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때뿐이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다 MP3로 갈아탈 때 굳이 녹음도 사용도 불편한 MDR을 쓴다던가 하는. 변하지 않으려 애쓰는 고집은 '나는 너희와 달라.'라는 심리적 허영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숙고의 결과였는지를 증명할 대상도 없이 혼자 끝끝내 증명하려 아등바등 애쓰다 제풀에 지치고야 마는. 
그중에서도 마음이 변하는 게 참 끔찍해서, 나는 스스로를 잘 짜여진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고, 아주 어려운 잠금장치를 몇 개씩이나 달아 둔 셈이다. 한 십 년쯤 지나면 어떤 순서로 풀어야 하는지, 암호는 뭐였는지 나조차 알 수 없어 끝끝내 그 안에 갇혀 생을 마무리하고야 말도록. 

이 지경이 되고 나서야 탈피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야. 나는 여전히 꼼짝 않고 이 안에 있을 셈이거든. 다만, 명확히 해 두고 싶었어. 
이게 선천적인 내 특성인지, 혹은 후천적인 무언가의 결과인지를. 


국민학교 때부터 주구장창 듣던 얘기가 있었다.
중학교만 가 봐라, 서태지가 그렇게 좋은가.

중학교에 가서도 들었다.
고등학교만 가 봐~ 서태지며 젝키며 그런 게 좋은가. 친구랑 노는 게 재밌지.

고등학교에서도 변함없이 들었다.
대학 가서 연애해봐~ 서태지며 젝키며 신화며 그런 애들은 안중에도 없어질걸.

대학교에 가서도 간간이 들었던 것 같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이 들면 서태지고 젝키고 신화고 동방신기고 그런 건 뒷전이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십몇 년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비슷한 류의 얘기를 듣지 않게 되었다. 연애는 남들보다 일찍, 많이 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고도 모자라 웃자라기까지 했다.
대신 서태지가 밥 먹여주냐, 신화가 너 아냐.. 같은 '존재의 증명'을 질문으로 들었지만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살아요 / 신화를 딱히 사적으로 알고 지내고 싶지는 않아요(단호).

상담 선생님께 내가 그랬다. 당연히 좋으니 계속 좋아 한 거지만, 어쩌면 저런 평가들로부터 나를 증명해야만 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긴 건 아닐까요. 

선생님이 물었다. 그럼 처음부터 아무도 저런 말을 안 했으면, 지금까지 계속 안 좋아했을 것 같아요? 

- 아뇨. 그러진 않았을 거에요. 그냥 우리끼리 평화롭게 빠질했을 거에요. 근데... 강도와 밀도는 좀 달라졌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를 악물고, 만사를 제끼고, 언제나 0순위로 두고 움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 정도. 외부의 적이 없으니 지켜야 할 게 없고, 그만큼 느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하지만 좋아하는 걸 그만두진 않았을 거라는 거네요. 
상담사의 말에 나는 또 안심했다. 나 스스로를 다시 증명하는데 성공했거든. 

그리고 나서 몇 주가 지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꾸 못다 한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십 년 전의 나, 내 방의 풍경이 생각났다. 색 바랜 금색 프레임의 공주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그 자리가 CD 컴포넌트로 바뀌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던 단 한 장의 앨범.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다른 테이프(혹은 씨디)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당연해서 의심조차 해본 적 없이, 나는 그냥 계속 듣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여기까지 되돌리는 동안, 단편 같은 기억들이 힘을 보탠다.

- 쟤는 방에 하루 종일 똑같은 노래를 틀어놔.
- 어떻게 한 곡만 며칠씩 들어? / ... 몇 달도 들어.

결국 내 덕질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타인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던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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