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라는 직업이 버블이라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과연 버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하며 Steven J. Harper의 <The Lawyer Bubble>을 읽었다.
하지만 책이 집중하는 지점은 조금 달랐다.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의 허상을 단정하기보다는, 그 직업을 둘러싼 구조를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로스쿨이랑 대형 로펌이 실제로 어떤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그 현실을 먼저 들여다보게 한다.
로스쿨 진학을 앞둔 사람에게는 다소 암담하게 읽혔지만, 법조 산업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로스쿨을 지망하는 나에게 로스쿨은 당연히 교육을 받는 '학교'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미국의 많은 로스쿨이 사실상 학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업체'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Too many deans are wedded to running their schools as businesses for which U.S. News & World Report rankings supply the definitive means of evaluation.
로스쿨이라는 사업체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교육의 질이나 졸업 이후의 커리어보다 US 뉴스 랭킹 같은 외부 지표, 즉 '실적'이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사업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운영 자본은 결국 등록금에서 나온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꾸준히 입학해 학비를 내는지가 곧 학교의 재정과 직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 시장이 악화되더라도, 로스쿨은 학급 규모를 줄이기보다, 어떻게든 정원을 채우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입학 기준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말이다. 학생 한 명은 몇 년 동안 이어질 확실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을 하나의 사업체로 본다면, 그 안에서는 당연히 시장 논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장은 여느 시장처럼, 결코 평등하지 않다. 학교마다 위치한 층위가 다르고, 그 차이는 졸업 이후의 결과로 이어진다.
The law school market is not a single market at all... Those submarkets produce dramatically different outcomes for particular law schools and their graduates.
그리고 역설적으로, 취업 성과가 가장 좋지 않은 로스쿨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부채를 남기기도 한다.
Many of the schools with the worst employment outcomes leave their graduates with the highest levels of law school student debt.
이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안정된 커리어와 사회적 지위를 자동으로 보장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으로 로스쿨에 진학한다면, 기대했던 미래 대신 졸업과 동시에 억대의 빚을 짊어질 수도 있다.
If the law ends up being the wrong path, then debt becomes the rock that Sisyphus had to push uphill for the rest of his life.
만약 법조계가 나와 맞지 않는 길이었다면, 그 빚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시지프스가 영원히 밀어야 할 바위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바위는 대출금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안에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 로스쿨을 졸업한 이상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그 기대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허영심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을지 모른다.
대형로펌의 구조는 애초에 모두가 꼭대기에 오를 수 없도록 설계된 피라미드다.
The law firm pyramid with associates at the base and equity partners at the top requires a remarkable thinning of ranks on the road to a partial ownership interest in the firm.
그리고 그 피라미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non-equity partner다.
명함에는 '파트너'라고 적혀 있지만, 지분과 의결권이 없기에 실질적인 권한은 거의 없다. 책임과 업무 강도는 그대로인데, 보상과 권한은 제한적이다. non-equity partner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지만, 진짜 지분을 가진 equity partner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The number of non-equity partners grew threefold, the number of new equity partners grew by less than one-third.
Once they receive the scarlet letter of permanent non-equity status, their morale plummets—and understandably so.
이 책은 non-equity partner라는 지위를 '주홍 글씨'라고 표현한다. 다소 잔인한 비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정확한 표현이라고 느꼈다. 겉으로는 승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더 이상 피라미드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낙인이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파트너라는 이름을 통해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면서도 지분은 나누지 않을 수 있다. 정말 파트너로 대우할 생각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권한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non-equity partner라는 직함은 2등 시민을 제도화한 허울뿐인 이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이 구조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형로펌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대형로펌은 '파트너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파트너십의 실체가 없다. '파트너'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건,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아니라, 소수의 자리를 두고 서로를 밀어내고 버텨내야만 하는 생존 경쟁이다.
Behavior that didn’t contribute to the bottom line dropped out of the calculus by which law firm leaders assessed their partners.
공동체, 멘토링, 후배 양성, 협업 등과 같은 가치들은 수치화되거나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의 기준에서 밀려나고, 자연스럽게 조직 문화에서도 점점 덜 중요해진다.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클라이언트를 독점하고, 후배를 소모하고, 실적을 가로채는 소모적인 행위들이다. 공동의 목표보다 개인의 생존이 우선시 되는 문화, 그것이 곧 대형로펌의 기업문화가 된다.
In large law firms, exploding inequality has become one symptom of a profound ailment: the singular focus on compensation that rewards bad behavior—hoarding clients, demanding more billable hours, raising leverage ratios. As the prevailing model creates amazing wealth for a few, it encourages attitudes that poison working environments and diminish the profession.
대형로펌의 문화를 지탱하는 두 가지 축은 돈과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것이 바로 billable hour로, 대형로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이 시스템에서 '성과'란 일을 얼마나 빨리, 잘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청구했는가로 환산된다.
“Leadership’s primary goal is increasing equity partner wealth. More is better, and the misnomer ‘productivity’ persists.”
“The behavior that maximizes hours is antithetical to true productivity... More hours often mean the opposite of real productivity.”
이것이 내가 대형로펌의 문화에서 느낀 가장 기형적인 지점이었다. 많이 일하는 것이 곧 잘 일하는 것이라는 등식은 현실에서 자주 틀린다. 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조차 대형로펌이라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Somehow those negative images can’t compete with the positive ones. Psychologist Daniel Kahneman, who won a Nobel Prize in economics, may have a partial explanation. Kahneman researches and writes about a universal human characteristic: clinging to preconceived notions, even as contrary information and unambiguous data undermine them. The phenomenon is a variant of confirmation bias, the tendency to credit information that comports with established beliefs and jettison anything that doesn’t.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Daniel Kahneman은 인간이 가진 심리적 편향 중 하나인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이미 믿고 싶은 걸 더 신뢰하고, 그와 충돌하는 현실은 애써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법조계의 취업난, 번아웃, 빚 등 이미 여러 문제는 수많은 통계와 증언을 통해 충분히 공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예비 로스쿨 지원자들은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다르지 않을까라고.
Too many individual pre-law students find comfort in seeing only what they want to see as they move toward law school and beyond.
특히 현재가 불확실할수록 그 믿음은 더 단단해진다. 뚜렷한 진로가 보이지 않을 때, 스펙은 쌓였지만 방향은 모호할 때, 이대로 직장인의 삶에 멈춰 서 있기는 싫을 때, 로스쿨은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답처럼 보인다.
Some people go to law school because it’s the last resort of the liberal arts major who doesn’t know what to do next…
문제는 그 선택이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수천만 원의 학비와 3년의 시간,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할 냉정한 현실까지 감당해야 한다.
Anyone who uses law school to buy three years of time is writing an expensive check to avoid a decision about the future.
로스쿨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좋은 기회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애매함을 포장하려는, 현실 회피를 정당화하려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로스쿨이라는 선택 그 자체보다, 그 선택을 하게 만드는 동기다.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혹은 지금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정답지처럼 보이는 선택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