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이후 로스쿨 고르는 과정: Admitted Students Day
미국 로스쿨에서 합격 통지를 받는 순간, 입시의 권력관계는 조금 달라진다.
지원 단계에서 지원자는 철저히 '을'의 위치에 놓인다. 합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몇 달 동안 결과를 기다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학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합격 통보가 도착하는 순간, 그 권력 구조는 조금 바뀐다.
이제는 학교가 합격자를 설득하는 단계가 시작된다. 학교는 합격자가 등록해 주기를 원하고, 합격자는 합격한 여러 학교 가운데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조금 과장하면, 이 시점부터는 학교를 '쇼핑'하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로스쿨들도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 선택지인지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ASW (Admitted Students Weekend), 혹은 ASD (Admitted Students Day)다. 말 그대로 합격한 학생들(admitted students)을 캠퍼스로 초대해 로스쿨을 직접 보여주는 행사다.
중요한 점은 ASW가 이미 등록을 마친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행사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합격생을 대상으로 한다. 즉,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들은 결국 해당 로스쿨에 등록을 할 수도 있고, 다른 학교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로스쿨 입장에서는 합격 이후 단계도 꽤 중요하다.
미국 로스쿨 입시에서는 흔히 yield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로스쿨이 합격시킨 학생 가운데 실제로 등록한 학생의 비율을 의미한다. 학교 입장에서는 이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
지원자에게 합격 통보를 보내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yield를 통제할 수 있지만, 일단 합격을 시킨 이후에는 그 학생이 실제로 등록할지 여부를 학교가 통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들은 합격생이 등록을 결정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자원을 투자한다.
결국 ASW는 로스쿨이 합격생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다.
평소의 학교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보통 날씨가 가장 좋은 3~4월에 행사를 열며, 가장 인기 있는 교수의 강의를 모의수업 형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또 학교에 대한 애정이 크고 커리어도 잘 풀린 동문들을 초대해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한마디로 말해, 아주 큰 세일즈 피치다. 그래서 ASW만 보고 학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비록 3년간 경험하게 될 학교의 모습과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긴 하겠지만, 나는 ASW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그렇게 많은 학교에 합격한 것도 아니어서 결국 한 군데의 ASW만 가게 되었다. 다른 두 학교는 내가 이미 살았던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도시 분위기, 생활환경이나 캠퍼스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반면 ASW에 참석했던 학교는 랭킹도 마음에 들었고, 장학금 조건도 좋았지만, 그 주 자체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3년 동안 살 가능성이 있는 도시인데, 정량적인 지표가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결정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SW에 참석하게 되었다.
미국이 워낙 큰 나라다 보니 ASW에 참석하려면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로스쿨이 참석 학생들에게 travel stipend를 제공한다.
다만 금액과 조건은 학교마다 꽤 다르다. 어떤 학교는 몇 백 달러를 지원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아예 지원이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학교는 거리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참석한 학교는 약 $500 정도를 지원해 주었다. ASW 프로그램은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 진행되었고, 나 역시 이틀 동안 그 도시에 머물렀다. 항공권은 비교적 늦게 예약해 약 $500, 호텔은 약 $200 정도가 들었다.
그래서 완전히 저렴한 여행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제휴 호텔을 안내해주기는 했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 복지 사이트를 통해 예약하는 것이 더 저렴했다.
그래도 학교에서 커피와 삼시 세끼를 모두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교통비와 숙박비 외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ASW 스케줄은 보통 미리 공유된다.
내가 간 학교의 ASW는 이틀 일정이었고, 대략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로스쿨 학장의 환영 인사, 재학생 패널, 학생 단체 박람회 (student organization fair), 모의 수업, 커리어 서비스 세션, 주거 (housing) 안내, 각종 네트워킹 이벤트. 가족이나 파트너를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세션을 반드시 참석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아침 8시 세션에 참석하기 위해 무리하게 그 전날 비행기를 타고 올 필요도 없다. 자신이 특히 궁금하거나 관심 있는 세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 세션 위주로 참석하면 충분하다.
다만 travel stipend를 받으려면 참석 여부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캠퍼스에 도착하면 한 번 정도 체크인을 해야 한다. 보통 명찰을 받는 방식으로 확인이 이루어진다. 이후 세션마다 출석을 따로 확인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긴장됐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기대했던 프로그램은 모의 수업(mock class)이었다.
수업에서 다룰 케이스를 미리 보내주는데, 과제를 받고 나니 콜드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그 전날 잠을 설쳤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전혀 살벌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학교 입장에서는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가장 강의력이 좋고 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는 스타 교수님을 투입한 느낌이었다. 수업은 재미있었고 분위기도 편안했다.
1L 관련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gunner' 스타일의 학생들이 아직 입학 전인데도 꽤 보여서 흥미로웠다. 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계속 질문을 던지며 사고를 끌어내는 교수님의 수업 방식이 책에서 읽었던 것과 거의 똑같아서 신기했다. 로스쿨이 과연 나와 맞을까 고민했는데, 수업이 꽤 재미있어서 어쩌면 로스쿨에서도 나름 잘 버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애인이나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을 데려가는 것은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ASW에 애인과 함께 갈 계획이었다. 내가 로스쿨에 가게 되면 애인과 함께 이사를 해야 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인의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혼자 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더 나았던 것 같다.
앞서 말했듯 학교에서도 가족이나 파트너를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준비해 두기는 했다. 예를 들어 로스쿨 생활 동안 어떻게 정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 얼마나 로스쿨생이 스트레스를 받는지 등을 설명하는 세션이 한 시간 정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정은 입학 예정 학생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내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에 대해 알아보는 동안, 파트너를 계속 신경 써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행사는 당사자가 아니면 꽤 지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혼자 온 것이 오히려 더 편하게 돌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ASW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합격한 학생, 재학생, 동문, 교수 등...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꽤 진이 빠진다.
특히 나는 대부분의 로스쿨 입학 연령보다 조금 더 많은 편이라 다른 학생들과 공통분모가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내 미래 동기들과 친해지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몇 시간 지나고 나니 말할 기운이 떨어져 혼자 앉아 있기도 했다. 어차피 ASW에 온 모든 학생들이 이 학교로 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학교에 입학하면 따로 친해질 기회가 있겠거니 싶었다.
오히려 재학생과 동문들과의 대화가 더 유익했다.
특히 ASW와 별도로 한국 학생들에게 따로 연락해 커피챗을 신청했다. 이런 대화들이 생각보다 훨씬 솔직했다.
ASW 공식 행사에서는 아무래도 학교에 긍정적인 학생들이 패널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개인적으로 만난 학생들은 취업 및 비자 이야기, 해당 도시에서의 생활, 한국인으로서 로스쿨을 다니는 경험 같은 것들을 필터 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또 점심을 함께했던 동문들 중에는 빅로펌 파트너도 있었는데, 커리어 이야기뿐 아니라 결혼생활, 육아와 빅로펌 병행, 장거리 연애 같은 개인적인 경험도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그런 대화들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혼자 도시를 돌아다닌 시간도 꽤 의미 있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두었지만, 상당수의 정보는 이미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학교 공식 일정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혼자 도시를 돌아다녔다. 아파트도 보러 다니고, 동네도 걸어보고, 대중교통도 타보고, 그 도시의 핫플레이스도 가보고, 로스쿨뿐 아니라 캠퍼스 전체도 둘러봤다.
로스쿨 건물 안에만 있는 것보다, 내가 이 도시에서 3년을 살 수 있는지를 직접 느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로스쿨을 선택할 때 그 도시에서의 생활, 그 도시의 분위기도 꽤 중요한 요소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ASW 참석을 추천한다.
물론 며칠 방문한다고 해서 학교를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ASW는 어디까지나 학교가 준비한 행사이기 때문에, 실제로 매일 경험하게 될 로스쿨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3년을 보낼 장소를 직접 보고 결정하는 것과 인터넷 정보만으로 결정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ASW는 학교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내가 앞으로 3년을 보낼 도시와 사람들을 직접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방문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이 방문이 로스쿨을 결정하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