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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사청장 Nov 19. 2018

남자, 동굴을 갖다

퇴사 후 풍경, 열세 번째 이야기 - 30대 중반 퇴사자의 사업과 일상

남자에게는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대학생 이후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동굴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게 왜 필요한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결혼 전과 다르게 내방이라는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아내방 남편 방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침대방, 거실, 옷방 혹은 작은방, 큰방 등으로 용도나 크기에 따라 공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만의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아내와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소파에 같이 앉거나, 식탁에 마주 앉았죠. 

즉, 혼자 있거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혼자 생각하는 것은 지하철을 타며 이동하는 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의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참 많죠. 

돌아보면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 저는 공간의 분리를 추진했습니다. 

집에 판매하는 제품들을 쌓아두고 배송을 하였는데 이제는 별도의 사무공간을 얻어 그곳에 제품을 두기로 한 것입니다. 


퇴사를 하고, 저만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반지하 원룸의 10평 남짓한 공간. 

한쪽에 선반을 두고 물건을 잘 쌓아두고, 다른 한쪽에 책상을 놓고 책들과 노트북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 소파를 두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한 나만의 동굴이 생겼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집에서는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여서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도 적었고, 적정한 거리였기에 운동 겸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반지하지만, 빨래를 널거나 하지 않기에 습기도 별로 없었고,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하고, 겨울에는 보일러 덕분에 아주 따뜻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더 꿈꿀 수 있었습니다. 


업무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해서 일을 한 뒤에는 새로운 생각들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쌓아 놓고 읽었습니다. 앉아 있는 게 불편해지면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고,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잠시 자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왜 동굴이 필요한지 아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주어진 시간, 그 순간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몇 시간 며칠 생각하고 그쳤던 것이 아닙니다.  매일 같이 나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을 할 수가 있게된었던 것입니다. 어학연수로 1년 정도 일본에 있던 시기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입니다. 온전한 나의 공간..

지금은 사무실을 이사했지만(집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여전히 제게는 동굴 같은 사무실에서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누구나 바쁩니다. 직장인이라면 안 바쁜 사람이 없죠. 

대학생들도 바쁩니다 리포트 쓰랴 조별 모임 하랴, 스펙 쌓으랴, 아르바이트하랴.. 주부들은 뭐 말할 것도 없죠.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공부하느라 바쁩니다.  초등학생들은 더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저기 학원 다니느라 말이죠. 


우리는 바쁘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시간도 없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참을 수 없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즉, 메타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도 모른 채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삶을 삽니다. 


대한민국에선 부동산이 돈 버는데 최고야, 

공무원만 한 게 없어. 


직업을 누군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의 권유에 쉽게 결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대학을 들어가는 기준, 과를 정하는 기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깊게, 꾸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라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될까요?


첫째는 여행입니다. 

여행을 다니라고 하는 이유는 그 시간 동안 평상시 마주하지 않던 나를 보게 되게 때문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이제까지 살면서 겪어보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당황스러운 상황, 감격스러운 상황들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마주 볼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런데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고, 댓글 달기 바쁜 여행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둘째는 10대 20대 방황하는 시기입니다.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시기가 불현듯 닥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손에 놔버리고 펑펑 놉니다. 혹은 방에 처박혀 바깥활동을 중단합니다. 

이런 시기에는 사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을 수도 있어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방황하는 이 시기에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이후의 삶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러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상태라 행동하게 됩니다. 


35살의 인생을 살면서, 방황의 시기가 적지 않게 찾아왔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흘러간 시간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답이라 생각한 것이 있어서 머물러 있지 않고 그 답을 위해 움직인 시기가 있었습니다. 

10대에도 그랬도, 20대에도 그랬고, 30대에도 그랬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에 대해서 맞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흘러가는 데로 사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외국생활입니다. 

외국생활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유학이 될 수도 있고 워킹홀리데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타국에서의 생활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생활력면에서 강해지고, 외국 친구를 사귀는 경험도 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시야를 넓힐 수도 있습니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서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겪으면, 분명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는 시점이 올 것이며, 그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1년간의 일본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함과 동시에 많은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외로워서 울기도 하고, 아파서 울기도 하고,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스스로 눈물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타국의 생활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지만, 그래서 신께 더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 스스로의 민낯과 제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넷째는, 나이를 먹고 나서 물질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입니다. 

이때는 내가 이직을 잘할 수 있는지 또는 다른 수입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퇴직하면 먹고살 수 있을지 등등 본인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제가 부업을 결심하게 된 것도 직장이 어렵고, 결혼 후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가장 큽니다. 단순히 이직으로만은 현재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히 마주했기에 또 다른 수입원을 갖기 위해서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위의 시기들을 통해서 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돌아보고, 적어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위기를 마주하기 전에 피해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고, 문제의 해결책도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브라질 작가 코엘료 파울로의 <연금술사>라는 책과, 앤디 앤드루스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추천드립니다. 


퇴사 후 펼쳐진 30대 중반의 일상과 사업에 대한 기록 열세 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다음번 이야기는 <TV를 버리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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