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루지 못한 꿈

다음에는 사장으로

by E선

어려서부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많았다. 사람마다 각자 삶의 서사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그 인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를 열심히 듣고 있으면 다른 점에 놀라고 같은 점에 공감하며 즐거웠다.

아마 그래서 나는 E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이 되니까.

그래서인지 늘 마음 한편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짧은 여행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그 공간, 그 안에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24살, 2014년, 임용고시를 마치고 졸업을 한 후 발령대기에 들어갔다. 시험점수로 보면 9월쯤 발령이 난다고 예상했기에 약 7개월의 마음 편한 백수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기간제나 시간강사를 구하는 친구들도 있고 임용고시기간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에 어리둥절해했다. 긴 학창 시절 내내 목표가 항상 있었기에 갑자기 붕 뜨는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약 2개월 동안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시간강사를 했다. 1시간가량 떨어진 학교에서의 첫 강사경험이 나쁘지 않았지만 평생 해야 할 일을 지금 이 순간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하길 얼마나 잘했는지.


초등학교 때의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의 존재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말로는 굉장히 있어 보이지만, 숙식 제공받는 무료 아르바이트 뭐 그런 거였다.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은 청년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 한 칸을 주고, 무료 노동을 시키는 구조였다. 해 보고 싶었다. 일이 힘들지 않을까라는 걱정보다 사람들을 맘껏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렇게 해서 만난 제주도는 과거 수학여행으로 갔던 3박 4일의 제주도가 아니었다. 도두일동에 머물면서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과 스텝언니와 장기숙박객 아저씨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이틀 일하고 이틀 쉬는 방식으로 일이었다.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의 3층은 카페테리어 및 스텝언니와 나의 방이었고 4층은 손님들의 공간이었다. 방 5칸의 게스트하우스였다.


매일아침 느릿느릿 일어나 사람들의 아침을 준비해 주었다. 계란틀을 사용해 동그랗고 예쁜 계란을 약한 불로 익혀주고, 소세지 몇 알과 빵 두 조각을 구워냈다. 사장님이 사다 놓으신 방울토마토도 씻고, 스프도 한 국자 가득, 옆에 딸기잼까지 세팅해 놓으면 어느 정도 완성이었다. 손님들이 4층에서 잠을 깨고 3층으로 내려오면 한 접시씩 건네며 아침을 나누었다. 어떤 분은 사진을 찍고, 어떤 분은 “잘 먹겠습니다” 하고 깨끗이 비워냈다. 어떤 분은 좀 부실한 거 아니냐는 농담 섞인 말을 건네기도 했다. 반응이야 어떻든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정성껏 무언가를 만든 경험이 거의 없던 나에게 그 모든 것이 새롭고, 조금은 뿌듯했다.


아침을 하고 나면 이불정리 시간이다. 빨 이불들과 시트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사장님이 빨아놓은 이불을 예쁘게 펼쳐놓고 지난밤의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생전 해보적도 없는 화장실청소도 얼렁뚱땅 하고 나면 오전일정이 끝이 났다. 단 몇 줄로 정리가 되지만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내 집 청소도 내 이부자리도 잘 정리 안 하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후회도 잠시 스쳐갔다. 남이 자고 난 이불을 정리하고 휴지통을 치우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들을 돈도 안 받고 한다니 , 이걸 하려고 내가 내려왔나 싶지만 사장님이 한 번 더 손을 봐야 된다는 점에서 돈 받고 하긴 그른 것 같기도 하다.


12시부터 4시 정도까진 자유시간이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제주시며 협재며 갈 수 있는 곳을 가보았다. 그때는 면허가 없었던 때라 쓸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튼튼한 두 다리와 자전거 아니면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뿐이었다. 혼자서 식당에서 밥도 못 먹던 내가 혼자서 틈틈이 제주 곳곳을 다녔다. 혼자 해변에 앉아 있기도 하고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다.


4시에 느그적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면 사장님이 체크인 명단을 주었다. 체크인 명단을 받으면 그때부터 설레었다. 어떤 사람들이 올까 어떤 이야기보따리들을 가지고 올까 궁금했다.

혼자 온 사람들도 있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오는 사람들, 제주국제공항에서부터 자전거 여행을 하시는 분들 큰 배낭을 메고 엄마와 올레길을 걸으러 왔다는 모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매일 모여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는 사람도 있었고, 함께 어울리지 않고 자러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매일매일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생각보다 근사한 경험이었다. 누나, 누나 하며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대학생 친구들도 있었고, 언니, 동생 하며 반나절 만에 친해져 버린 언니들도 있었다. 이름보다 먼저 관계가 붙는 그 낯선 친밀함이 참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알고 보니 서울 같은 아파트 동네 주민을 두 명이나 동시에 만나는 날도 있었다. 멀리 제주도까지 와서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 한 숙소에 모였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놀라며 친근감이 배가 되었던 그 밤이 생생하다.


육지에 가서 굳이 서로를 찾지 않으면 다시 만날 일 없는 그런 상황 속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풀어냈다. 파혼이야기, 이별이야기, 이직이야기 등등 많은 삶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속얘기를 한껏 하다가 같이 스피커를 들고 밤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제주도 푸른 밤>을 틀어놓고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여행의 즐거움도 한껏 털어놓고 나면 다시 아침이 왔다. 다음날이면 다들 자신의 일정에 따라 헤어지기도 하고, 함께 동행하겠냐고 묻는 사람들과 마라도도 가고 제주도 서쪽 여행도 했다.

만남과 헤어짐이 수차례 일어나니 생각보다 지치는 날들도 있었다. 마음을 힘껏 주고 나면 홀연히 떠나 버리는 상황이 당연한 건데도 힘들었다.

그제야 “매일 그렇게 마음을 주다 보면, 네가 먼저 지칠 거야. 적당히 선을 두는 것도 필요해”라고 말했던 사장님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맞아 게스트하우스 머무는 기간을 더 길게 바꾼 사람도 있었고, 여행계획을 수정해서 나의 오프시간을 보내준 사람들도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그들의 제주여행은 나와는 달리 빨리 끝나고 또다시 이별이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후에 다소 어떻게 사람을 맞이하고, 어떻게 적당히 보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갔다. 모든 인연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오히려 손에 꼭 쥐지 않아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인연도 있다는 걸. 그 순간 서로 나누는 마음으로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도 배웠다.

제주에서의 그 며칠들은 매일이 내게 연습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이고, 웃음을 나누고 맥주 한잔을 나누다가도 떠날 땐 웃으면서 보내주는 연습.

10년 전, 두 달간의 제주살이의 경험은 꿈처럼 흘러가버렸지만 나는 아직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이 일은 결코 꿈처럼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그래도 먼 훗날 다시 제주도에서, 내 공간을 열고, 마음 좋은 사람들과 밤바다를 향해 걷고, 아침엔 딸기잼을 곁들인 토스트를 내어주며 살고 싶다. 오는 손님을 밝게 맞이하고 가는 손님을 쿨하게 보내줄 수 있는 멋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