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에세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맞서 대들거나 반대함.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살면서 많은 반항을 한다. 반항의 조건은 꽤 단순하다. 어떤 상대가 나의 자유의사를 억누르거나, 나의 인내심의 한계선을 넘는다거나, 무언가를 강제할 때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우리는 반항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반항'과 '악(惡)'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 게시물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 배우였던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그 사건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한물간 할리우드 배우인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매니저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이다.
제2의 전성기를 위해 촬영장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하는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이 영화의 꽃은 브래드 피트가 담당한다. 그(클리프 부스)는 릭 달튼과 촬영장을 같이 다니며 매니저로서 본인의 배우를 서포트한다. 이전에 본업이었던 스턴트맨에도 계속 지원하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며 키우는 개와 시간을 보낸다. 잔잔한 인물이지만, 어떤 '선'을 넘으면 참지 않는다. 그 선을 넘었다가 죽거나 다친 인물들이 많다.
2시간 5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중 2시간 40분 정도는 고요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고유의 연출이 계속된다. 기나긴 시간 동안 답답할 정도로 조용하고, 평온하다. 이렇게 평온한 이유는 마지막 10분을 폭발시키기 위함인데, 타란티노는 '폭발한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영화를 만든다. 2시간 40분간 남들 모르게 공을 들여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마지막 10분에 심지에 불을 붙인다.
영화 후반부에는 히피 패거리가 샤론 테이트와 폴란스키를 살해하려다 그 옆집에 살던 릭 달튼을 살해하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릭의 집에 침입한다. 그때 LSD 담배에 취한 클리프가 집으로 걸어 들어오고, 영화 내내 조금씩 선을 건드렸던 히피들이 끝내 집까지 들어오자, 오히려 잘 걸렸다는 듯 히피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궤멸시킨다. 당황하여 피신했다가 마지막에 등장한 릭의 화염방사기 신은 정말이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타란티노는 반항 중에서도 1차원적인 반항이라고 할 수 있는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영화에서 특정 인물, 혹은 특정 상황을 타개하는 반항을 많이 보여주는데, 영화를 볼 때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자극적이지만, 은근한 쾌감을 준다. 차마 현실에서는 저지를 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상상만 하던 장면을 실제로 구현한다.
우리는 선을 넘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한다. 5분 지각했다는 이유로 각목을 들고 패던 중학교 체육 교사, 교복 위에는 무채색 패딩만 입을 수 있도록 바꾼 교칙을 발표할 때, 그럼 이미 패딩을 산 사람은 어떡하냐는 학생의 질문에 너네 집은 거지냐고 묻던 고등학교 학생주임, 잘 지내보려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뒤에서 악성 루머를 퍼뜨리던 대학 동기, 그냥 날 무시하는 직장 상사(이유도 모른다)까지 차고 넘친다.
우리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항을 한다. 작용이 아니라 반작용이다. 어떤 작용이 선행해야 한다. 그중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반항할 수 있음에도, 사회인이자 지성인으로서 도덕적 기준 내에서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한 반항 일지 고민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그런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참아도, 영화의 인물들은 참지 않는다. 참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