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에세이 #브리저튼 시즌2 (2022)
넷플릭스 오리지널 <브리저튼>(2020)은 시즌 1이 나왔을 때부터 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시대물, 특히나 영국 시대물을 좋아하여 <셜록>부터 <피키 블라인더스>까지 전 시즌을 섭렵한 나에게 영국 사교계의 이야기는 그 수위와 내용을 떠나 배경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시즌 2까지 정주행을 마친 지금, 브리저튼을 생각하면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이유는 연기력도, 캐릭터도 아닌 다름 아닌 캐스팅, 즉 PC(Political Correctness)가 가장 큰 이유다.
'PC(Political Correctness)'는 다문화주의를 주창하며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운동이다. 차별이나 편견을 담은 표현이나 일부 인종 또는 계층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지양하고, 특정 문화나 인종이 아닌 모든 문화를 받아들이고 고루 학습하여 모든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의만 놓고 보면 결코 나쁜 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표현의 자유에 근거하여 좋고 나쁜 운동을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다. 지금 쓰는 이 글도 그런 자유가 있기에 쓸 수 있다.
다만 PC는 종종 기성 문화에 저항하는 방식에 있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쌓여온 문화 자체를 부정한다. 일부 급진적인 PC주의자들은 그들의 행위와 논리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을 한데 묶어 차별주의자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PC가 장악한 매체나 제작사는 작품에 과도한 PC요소를 집어넣어 놓고, 부자연스러운 전개와 설정을 불편해하는 시청자를 도리어 비난한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흑인, 동양인, 페미니즘, 성소수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작품은 굉장히 찾기 어렵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엘리트들> 등 수많은 인기작에는 PC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보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강조하고,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자칫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 또한 받아들이려 애썼다. 차별은 없어져야 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모든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는 쌓여온 '사실'이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아프고 잘못되었을지언정 부정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아무리 옳은 취지의 사상과 운동이라도 강요하면 반항하고 싶어 진다. 차별에 저항하는 이들이 별생각 없는 사람에게 평등을 강요하면, 그 반작용으로 차별주의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시대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증'에 있다. 그 시대가 30년 전이든 300년 전이든, 직접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고증을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와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적당한 각색도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조상들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19세기 유럽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흑인 공작과 왕비가 아니다(흑인 왕비는 실제로 있었다는 설도 있다는 것을 앎에도 그러하다). 심지어 시즌2에서는 인도 출신 귀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설정이다. '만약 흑인이 19세기 영국에서 귀족이 되었다면?' '영국 귀족 집안 장남이 인도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면?'도 아니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뻔뻔하게 등장한다. 그들이 대체 어떻게 그 시대에 귀족이 될 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속이 터지는 노릇이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가 없었더라면 아마 완결까지 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흑인도, 동양인도, 그리고 성 소수자도 사회에서, 창작물 내에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백인도 마찬가지다. 에미넴과 영화 <8마일>의 성공은 그전부터 존재하던 흑인과 힙합 문화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었기에 가능했다. 문화 자체를 왜곡하고 부정하면 문제 해결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중국 사극에서 한복을 입었다고 분노했다면 19세기 영국에 흑인 귀족이 나오는 것도 똑같이 분노해야 한다.
차별을 없애려면 그전에 존재했던 차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는 방법은 포용과 설득이지, 왜곡과 강요, 흑백논리가 아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언제나 햇볕이었다. 넷플릭스 11년 만의 구독자 감소의 원인은 단순히 타 OTT 서비스 출시와 구독료 인상만은 아닐 것이다.
이 게시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