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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Jan 27. 2022

평론가에게 음식을 던진 셰프

#영화같은 에세이 #아메리칸 셰프(2014)


나는 의미 없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의미 없는 영화란 대놓고 킬링타임용으로 만든 상업영화에 해당하는 억지 감동 신파극,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 등이 있다. 어찌 됐든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잠시 동안 멍해지면서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진한 울림과 교훈이 있는 그런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진지충이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그런 영화들을 전혀 안 보는 건 아니다(나는 스타워즈와 마블 시리즈의 팬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코미디의 수준이 굉장히 올라가서, 잘 웃지 않는 나를 배가 아프도록 웃기는 영화도 더러 있다. 그런데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틀었는데 의외로 무언가 크게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조용히 감독과 배우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네고, 머쓱한 반성과 함께 비슷한 류의 영화를 찾아보기도 한다. 이 영화를 봤을 때도 그랬다. 특히 배가 심하게 고파졌다. "절대 빈 속으로 보지 말 것"이라는 예고편의 문구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칼 캐스퍼(존 파브로)는 미국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이다. 어느 날 유명한 음식 평론가가 식당을 찾아오고, 칼은 어느 때보다 신경 써서 음식을 내놓지만, 그날 저녁 평론가가 쓴 리뷰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별 다섯 개 만점에 두 개. 그리고 신랄한 혹평이 칼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자존심을 다친 칼은 트위터로 평론가에게 욕설 비슷한 메시지를 보내려다 실수로 공개 트윗을 남기게 되고, 평론가가 답장을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결투 신청 비슷하게 되어버린다. 평론가의 재방문에 대비하여 칼은 심혈을 기울여 메뉴 개발에 힘쓴다. 하지만 평론가가 다시 찾아온 날, 칼은 메뉴를 선보이지 못한다. 레스토랑의 사장 때문이다. 사장(더스틴 호프만)은 기존 메뉴를 먹으러 방문한 예약 손님들을 두고, 평론가 한 명 때문에 메뉴를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메뉴는 기존 그대로 나간다. 칼이 결투를 회피했다고 여긴 평론가는 앉은자리에서 또다시 혹평을 남기는 트윗을 올리고, 이에 격분한 칼은 직접 그를 찾아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음식을 집어던지는 등 난장판을 만든다. 결국 그 사건으로 칼은 직장과 명성을 둘 다 잃는다. 심지어 그날의 모습을 손님들이 찍어 각종 SNS와 유튜브에 올린 바람에 재취업도 어려워졌다.


칼은 아내와 아들 한 명이 있다.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고, 아내의 집에 사는 10살짜리 아들과는 2주에 한 번씩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전처 이네스(소피아 베르가라)는 실직으로 낙담한 칼에게 푸드트럭을 권유하고, 창업을 위해 본인의 전남편, 그러니까 전전 남편을 찾아가 보라고 조언한다('할리우드 스타일'이라는 말은 역시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칼은 전 부인의 전전 남편 마빈을 찾아가 오래된 트럭을 얻어서, 본인을 따라 레스토랑을 뛰쳐나온 주방 보조 마틴, 그리고 방학을 맞아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픈 아들 퍼시와 함께 마이애미부터 LA까지 미국을 돌며 푸드트럭을 개시한다.


고사리손으로 아빠를 돕는 아들 퍼시가 특히 귀엽다. <아메리칸 셰프> , 2014


어딘가에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그중에서도 음식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면 나는 항상 이 영화를 언급한다. 그만큼 음식 묘사가 완벽하다. 재료 구입부터 조리 과정, 플레이팅, 그리고 사람들의 먹는 모습까지. 특히 푸드트럭의 메인 메뉴인 쿠바 샌드위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내내 군침이 돌게 만든다. 그런데 이 영화를 언급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푸드트럭이 이동할 때마다 나오는 음악, 그리고 어떤 지역에 도착하면 그 지역의 특유의 분위기가 사운드트랙으로 표현된다. 전처 이네스와 이네스의 아버지, 마틴 등 히스패닉계 인물이 다수 나옴에 따라 음악도 라틴재즈가 주로 나오고, 목적지인 뉴올리언스에 가까워지면 뉴올리언스 재즈와 블루스가 나온다. 경유지마다 바뀌는 음악을 들으며 마치 관객도 같이 커다란 트럭을 타고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음식 영화지만, 음악과 재즈를 좋아한다면 꼭 한 번 볼 법한 음악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무언가 크게 왔다고 했었다. 영화에는 큰 갈등이 없다. 초반에 칼과 레스토랑 사장의 갈등, 평론가 미켈과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극을 이끌어갈 정도의 갈등은 아니고 마찰 정도에 불과하다. 조금 심심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 전처 이네스와는 아들 문제를 제외하고는 갈등이 거의 없고, 이네스는 칼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친구로서 진심으로 그를 돕는다. 전 부인계(?)의 프란치스코 교황 급이다. 솔직히 칼은 이혼당해도 싸다. 다만 영화에서 가장 큰 갈등이 있다면, 그건 바로 칼 자신과의 갈등이다. <아메리칸 셰프>는 자격지심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음식 영화를 가장한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이혼 가정 영화를 가장한 40대 아저씨의 성장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여느 인간이 그렇듯, 칼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듯 칼은 완벽한 남편도, 아빠도 아니다. 완벽하지 못한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결핍은 그로 하여금 그의 재능이자 자랑인 요리에 더욱 집착하게 만든다. 요리에 대한 집착은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그 자부심이 다시 사장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등 일종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점차 칼은 음식 재료가 아닌 대상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잊은 듯 보였다.


겉으로는 아들 퍼시가 사춘기가 온 것 같다며 아빠로서의 고충을 토로하지만, 사실 퍼시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칼은 어딘가 서툴고 어색하다(그런 점에서 정말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칼에게 평론가의 혹평은 칼의 발작버튼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칼이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회복에 성공하는 칼의 모습을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자. 우리에게는 이네스와 마틴과 퍼시가 없다. 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잘 하자.




* 이 영화의 백미는 레스토랑 직원 몰리, 그리고 이네스의 전전 남편 마빈이다. 마블 덕후로서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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