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제7화. 원효대사의 물을 마시다

깨달음을 위한 해골 물 찾기

by 반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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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상처를 입는다. 다치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웬만한 상처에는 시큰둥한 편이다. 이날도 어디서 다쳤는지 약지가 크게 까졌다. 그나마 새끼손가락은 조금 까졌으니 다행이다. 대체 내 손은 무슨 일을 하는 건가! 사흘째가 되자 아픔이 조금 가셨다. 새벽에 무심코 상처의 흔적을 쳐다보는데 새끼손가락은 처음 봤을 때랑 차이가 없다.





내가 너무 내버려 뒀나? 까진 부분이라도 잘라야겠다는 생각으로 잡아뗐다. 그런데 이건 투명테이프가 아닌가! 그 순간 아팠던 새끼손가락 부위가 말끔히 사라졌다. 너무나 황당하고 신기했다. 원효대사는 유학을 가다가 해골 물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난 방 안에서 조그만 투명 테이프 조각으로 깨달음을 얻은 건가? 역시 평생 찾아야 하는 건 내 안에 있다.





20190728_054608.jpg 나를 사흘간 아프게 했던 투명 테이프





화장실 변기 물을 핥던 스핑크스가 묻는다.

해골 물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아마 마음속에 넘치는 물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을 수도 없이 본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데도 어른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마치 손으로 얼음을 조각하는 것처럼 변화가 힘들다.





기억나는 해골 우물의 공간은 보건실이다. 뜻밖에 학생의 출입이 잦은 곳이 바로 보건실이다. 내가 작은 섬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보건업무도 종종 맡았다. 보건교사가 없을 정도로 작은 학교였다. 시골아이들은 정말 많이 다쳤다. 집에서 다친 것조차 학교에서 치료받곤 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제2의 집이니까 그럴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중에 절반 이상이 마음의 병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다친 것은 정말 작은 상처지만 엄살처럼 크게 아파했다. 그러다가도 내가 그 아픔을 알아주며 밴드 하나를 붙이면 운동장에서 빨빨거리며 잘도 놀았다. 진짜 아픈 게 아니니 플라시보 효과도 아니고 만병치료밴드 효과라고 해야 하나? 여하간 부모가 바빠서 보듬지 못한 마음을 나라도 챙겨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군대 시절에는 손가락 한마디만 한 상처가 났고 곧 딱지가 생겼다. 그런데 지날수록 그곳이 아파졌다. 아문 딱지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지냈는데 때마침 군의관들이 우리 부대를 치료하러 찾아왔다. 시간 많은 말년 병장이라 찾아가서 다친 곳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군의관은 상처를 만져보더니 메스로 살짝 베었다. 안에 보니 고름이 심하게 찼었다. 그때 다른 아픔이 밀려왔다. 마음이 아픔을 깨닫는 게 신기했다. 스핑크스가 미련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마음은 나의 몸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해골 물의 깨달음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순간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해골 물을 마시고 싶다면 당연한 것을 재발견하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깨와 설탕을 섞으면 깨달음이 된다’는 초등 수준의 위트가 있다. 그 깨달음으로 나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지 날마다 기대된다. 스핑크스가 위트에 털을 곤두세우며 정색한다. 미안하다. 초등학생 뒤에 숨어서 개그 한 번 했다.




생각과 마음은 다른 것이다. 마음은 깨달음의 문을 열게 만들고 생각은 깨달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다리 저는 개를 보고 치료해 주고 싶을 때는 마음이 작용한 것이고 치료비가 얼마인지 궁금해지면 생각이 작용한 것이다. 마음은 아픔을 같이하는 것이다.

<절대강자>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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