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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Aug 13. 2019

아내 사랑 실천기|부탁이야? 지적이야?

아내의 문제점을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침 설거지를 열심히 하는 중에 아기 양치질을 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아내는 아기 양치질을 늘 잊곤 했다. 지금이라도 아내에게 말해야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다가 본능적으로 닫았다. 내가 어떻게 말해도 아내는 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생각난 김에 양치질을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안 되지만 최대한 애교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여봉~ 깜냥이 양치질 부탁해용"

"어(건성)"


나름 부드럽게 부탁했지만(사실 애교력이 많이 부족했다.) 4D 영화관을 알아보던 아내는 쌀쌀맞다. 역시 그녀로서는 '알아서 할 일'을 긁는 참견일 뿐이다. 어쩌면 '왜 깜냥이 양치질을 맨날 늦게 시키는 거야.'라고 투덜대던 옛날 내 모습이 그녀의 눈에 비쳤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아내가 요리 때 썼던 프라이팬 기름이 옹달샘처럼 한가득 방치되어 있었다. 도끼라도 던지면 금도끼랑 은도끼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끼가 없는 관계로 한참을 참다가 공손한 말투로 정리를 부탁했다. 2주에 걸쳐 3차례 이야기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세 번째 부탁 때는 솔직히 조금 뿔난 말투로 말했다. '난 왜 세 번이나 이야기해야 하지? 혹시 내 말을 무시하는 걸까?' 하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작용한 셈이다. 사실 아내는 날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냥 프라이팬을 신경 쓰이지 않던 것뿐이다. 성격이 나처럼 세세한 것을 보기보다는 큼직한 사건 위주로 보는 타입 인지도 모른다. 치우는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사실 예전에도 내가 '~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면 아내는 '네'라고 반응하기보다는 '알았어. 그런데 그러는 당신은~' 하며 나의 부족한 점을 반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상대방이 지적이라고 느껴지면 소용없다. 그럼 어떻게 할까? 뻔히 문제가 보이는데 말도 하지 말아야 하나?





자극이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그대로인 법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시도하면서 상대방만 바뀌기를  바라면 안 된다. 벌써 결혼 5년 차.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선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이 선을 넘으면 국지전인지 전면전인지 제갈공명과 손자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부부 사이는 마치 서로의 선을 침범한 올림픽 오륜마크와도 같다. 서로 얽혀서 결속된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하나로 상징된다. 독야청청한 완벽한 원의 진리를 포기하고 중첩된 원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존재이다. 참고로 오륜마크에서 나오는 중첩된 원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스위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이다. 융의 말처럼 원은 끊어지지 않는 도형으로 지속성과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 부부는 겹치는 원이니 그냥 원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렇기에 평생 공부하고 알아가야 할 관계라고 생각한다. 





왼손을 곧게 뻗고 그 상태로 한 바퀴 돌아라. 그 원의 크기가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복싱은 그 원을 네가 뚫어서 밖의 것을 쟁취해 오는 것이다.  

-<go> 영화 중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 대사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원 안으로 서로 쟁취했으니 이제는 지켜야 한다. 참 길게 돌아왔다. 그럼 앞으로 난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 잘 부탁할 수 있을까? 나의 결론은 이렇다. 부탁으로 예쁘게 포장해도 아내가 불쾌하면 지적이고 탓하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하자. 내가 하면 된다. 눈에 자꾸 밟히고 신경 쓰이면 내가 해결해버리면 될 일이었다. 왜 이걸 몰랐을까? 서로가 부족하니까 내가 그녀 옆에, 그녀가 내 곁에 존재하는 거다. 찌그러진 원이 조금은 펴졌으려나. 깨달음을 주는 아내여 Thank you!




피에쑤. 나 잘했으면 게임 한 판만 해도.. 미안. 바람 소리야. 





누구나 내가 대장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달궈진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Peter J.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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