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는 방법
나는 특수교사이다. 특수교사가 근무하는 곳은 크게 세 군데가 있다. 특수학급(학습도움반), 특수학교 그리고 특수교육지원센터이다.
상식
특수학급은 일반 학교 내에 있는 학급으로 장애학생의 교육을 지원해준다.
특수학교는 특수학급으로만 이루어진 학교를 말한다. 주로 장애가 심한 학생들이 다니는 만큼 전문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특수학교는 수요보다 많이 부족하다. 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으면 집값이 내려간다며 상식 이하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주민이 생각난다. 한참 뉴스에서 떠들썩했다.
특수교육지원센터는 특수학교 및 학급에 필요한 교육이나 행정 지원을 담당한다.
난 현재 특수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 경영하는 재량권이 크므로 초등학교 안의 초등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고민도 많다. 최근에 내가 학급운영을 잘하고 있는지 성찰하던 중에 두려움이 나를 간지럽혔다. 수단에 묻혀 목적의 가치를 잃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스핑크스의 털이 풀풀 날린다.
수단과 목적 중에 넌 어느 쪽으로 달리고 있지?
스핑크스는 질문만 던지곤 수수께끼를 낼 사람이 왔다며 나갔다.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수단과 목적의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웃음, 운동, 식사 등의 개인적 요소에서부터 가족, 친구, 직장 등의 사회적 요소 그리고 종교, 자연, 경제 등의 환경적 요소까지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수단으로만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내 사례를 예로 들면, 특수학급은 통합교육(장애학생과 일반학생의 통합을 위한 물리적, 사회적, 정서적, 교육적 지원)의 지향을 목적으로 하는 학급이다. 그럼에도 난 학급 내 장애학생에 초점을 둔 채 학급경영과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 기본 목적을 망각한 셈이다.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통합교육이라는 목적을 잊고 따로 떼어 생각한 점이 문제였다. 통합교육을 중점으로 두었다면 학급활동과 수업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나아갈 걸음은 달라진다.
학생지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가르친 윤수는 손에 음식이 묻는 것을 싫어했다. 처음에는 벌레 보는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점차 손을 빠는 정도로 바뀌었다. 물론 평소 사람이 빠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빤다. 특수교사라면 바르게 교정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것이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적을 먼저 생각해보자.
식사지도의 목적이 뭘까? 올바른 식습관을 기르고 건강한 나를 만들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수의 행동은 특이할 순 있지만 식사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건 차근차근 수정하면 된다. 꼭 급식시간에 할 필요도 없다. 수업놀이 중에 접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단만 생각하면 아이의 모든 게 다그쳐서 고쳐야 할 행동일 뿐이다. 내가 아이의 처지라고 상상해보자. 맛있게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 쉬지 않고 이것저것 잔소리하면 좋겠는가? 그 밥은 코로 몇 번 갔을 것이다.
식사지도의 목적을 생각하면 윤수에게 더 중요한 것은 편식지도이다. 채소를 전혀 먹지 않았다. 지금까지 먹은 채소가 단 하나도 없었다. 이건 건강에 문제가 된다. 손가락 빠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목표를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채소 찾기와 즐거운 식사 경험 주기로 정할 수 있다.
식사지도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실수가 있다. 편식을 줄이겠다고 나온 음식을 무조건 먹게 하는 행동이다. 누구나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식재료는 존재한다. 그것을 억지로 먹인다는 것은 아이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그 채소를 안 먹는다고 영양의 불균형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다른 채소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수단으로 목적을 잡아먹는 행위다. 실제로 억지로 먹이다가 문제가 되어 뉴스로 나가기도 했다. 오만상을 짓는데 건강한 내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혐오감만 늘어날 것이다. 싫어했다가 다시 좋아하게 되는 선택권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에게 있다.
수단과 목적을 가만히 보면 카메라의 두 가지 촬영기법이 떠오른다. 첫째, 수단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어 점점 확대하는 줌 인과도 같다. 또렷한 행동이 보이고 결과가 나온다. 둘째, 목적은 피사체로부터 점점 멀어져 전체 배경이 보이는 줌 아웃과도 같다. 깊은 성찰이 그려지고 방향이 나온다. 왜곡된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면 방의 멋진 인테리어에 ‘좋아요’를 누르지만 그 프레임을 벗어난 곳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있다. 목적을 잃으면 포장된 나를 진짜처럼 과시하는 용도로 변질한다. 심지어 사진을 위해 소비습관까지 바뀌고 있다. 수단은 발이요 목적은 머리다. 생각 없이 걷는 길은 지구 반대편으로 갈 뿐이다.
송현수 작가의 <커피 얼룩의 비밀>을 보면 유한크로락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2012년에 락스 방울 튐 방지 기능이 추가되었다. 출구의 손잡이 쪽에 직경 3mm의 공기구멍을 만들어서 락스를 따를 때 출렁거리지 않고 덜 튀도록 설계한 것이다.
회사는 이윤 창출을 위해 존재한다. 만약 유한회사가 돈만 생각했다면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락스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다면 락스의 기능을 높이면서 더 많은 이윤을 얻는 방법만 고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사람중심’이라는 목적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 락스 원액이 튀지 않도록 연구한 것이다.
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렇게 수단에 매달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유한 락스처럼 막힌 3mm의 구멍을 뚫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뚫는 용기.
수단에 매몰되어 목적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