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제12화. 나의 껍질을 깨는 방법

프레임 깨기

by 반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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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를 당황하게 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가르치는 학생은 무슨 장애예요?”

최근에도 아이랑 같이 있는데 내게 불쑥 물어왔다. 정말 당황했다. 아이가 들으면 상처가 될 말을 하라는 건가? 황희 정승에게 검은 소가 더 힘이 세다고 속삭이는 농부가 된 기분이다. 일반교사나 일반인이면 덜 당황하지만 같은 특수교사가 물으면 더 당황한다. 대체 무슨 의도로 묻는 걸까? 그렇게 말하는 의도를 세 가지로 분석해보았다.

첫째, 대화의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호기심 때문에 비롯된다.

둘째, 장애에 관한 오해 때문에 비롯된다.

셋째, 용어의 착각 때문에 비롯된다.





첫째는 논외하고 둘째는 정말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특수학급에는 장애학생만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는 장애인과 특수교육대상자를 동일 선상으로 보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장애인은 광범위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반면에 특수교육대상자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를 말한다.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 중에는 장애등록을 받은 아이도 있지만, 아닌 아이도 있다. 예를 들어,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는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편한 프레임을 위해 싸잡아 장애학생이 다니는 반이라고 한다면 옳은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건 낙인이고 그런 인식에 따른 결과도 옳을 리 없다. ‘난 일반인이고 넌 장애인이야’라고 사회를 분리하는 순간 소수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해 인심 쓰듯이 뭔가 해줬다는 느낌은 잘못된 생각이다. 요즘 부부 사이에서도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줬다’라고 하면 3차 세계대전은 우리 집에서 발생할 것이다. 돕는 게 아니라 당연한 나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의 유무가 필요조건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당연히 받아야 하는 혜택일 뿐이다.





셋째, 용어의 착각은 전문가들도 자주 하는 실수이다. 장애명은 지원을 위해 의료적, 행정적으로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측면에서 장애는 일종의 프레임이다. 좁은 시야만 생긴다. 예를 들어, 아이는 무슨 장애예요?라는 물음에 내가 지적장애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럼 그 어휘에 담긴 정보가 얼마나 유용할까? 부정적인 이미지만 쌓일 뿐이다. ‘지적장애의 특성이 이러하니 이 아이를 이렇게 교육하자’로 통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적장애라고 모두 똑같은 특성이 있진 않다. 사람마다 단점이 다 다르듯이 같은 장애 안에서도 다 다르다. 차라리 아이의 특성이나 주의할 점을 묻는 게 더 정확한 질문이다.





예전에 시험을 준비하면서 장애유형별 구체적인 지도방법을 달달 외웠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의미 없는 일이다. 넌 무슨 장애니까 이 수업방법을 써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수업방법은 그냥 다른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법일 뿐이다. 대학교수들조차도 프레임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스핑크스가 검은 소처럼 울다가 묻는다.

프레임을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첫째, 회전문 사고법이 있다. 1980년대 인텔은 일본 기업에 밀려서 메모리 분야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CEO였던 고든 무어와 앤디 그로브는 고민 끝에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우리가 아닌 새로운 CEO가 온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게 바로 회전문 사고법이다. 회전문을 통해 지금의 내가 나가고 새로운 내가 들어왔다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기를 극복해냈다.





둘째, 타임머신 사고법이 있다. 이도권 작가의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를 보면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 Regret minimization framework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사표를 낼지 회사를 다닐지 고민하던 초창기에 이런 방법을 썼다. “만일 당신이 여든 살이 됐다고 가정하고 그때 나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 일상적인 판단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왔을 때 나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셋째, 가면 사고법이 있다. 기존의 시간, 장소, 사람, 역할 등을 바꿔서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방법이다. ‘만약 내가 ~라면’이라는 가면을 쓰고 보면 좁은 프레임을 강제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가정에서는 평소에 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집안일을 맡으며 아내의 어려움을 깨닫곤 한다. 직장에서는 내가 바라는 긍정적인 행동 한 가지를 바꿔서 그런 사람인 것처럼 습관을 만들기도 했다. 프레임은 무겁고 큰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가볍고 작은 프레임이 연쇄 행동하며 만드는 변화가 더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박사인 에이브러햄 J. 트워스키는 바닷가재 이야기로 스트레스에 관한 프레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바닷가재는 원래 흐물흐물한 존재였는데 껍질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지낸다. 껍질은 자라지 않지만 바닷가재는 자라므로 점점 조여 오게 된다. 그럼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든다.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바닷가재는 껍질을 바꿀 리가 없고 그냥 꽉 낀 껍질 속에서 살다가 죽게 된다. 따라서 트워스키 박사는 스트레스는 당신이 성장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리도 성장하고 싶다면 내가 가진 프레임을 자주 깨야 한다. 내 껍질을 벗을 때마다 달라지는 나의 지구를 보게 될 것이다. 스핑크스! 내 머리로 침 떨어져. 바닷가재 그만 상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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