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남자의 사랑 실천기
고정된 사고로 성을 보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옛날로 돌아가 보자.
19세기까지 유럽의 왕과 귀족들은 스타킹을 신고 다리 노출 인증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겼다.
기사들은 말을 탈 때 발을 고정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었다.
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장교들은 좀 더 멋진 몸매처럼 보이려고 코르셋을 착용했다.
손목시계를 차는 것은 치마를 입는 것과 같다며 거부했던 남성들이 현재는 부끄럼 없이 잘 차고 다닌다.
만약 옛날의 관습이 남아있었다면 나도 아내의 것보다 더 화려한 스타킹을 신었을지 모른다.
성의 가치나 역할을 강요하면 안 된다.
언제든 나의 결정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나'의 주인인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남성스러움이나 여성스러움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이해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추진력, 꾸준함, 도전, 희생 등이 나의 남성스러움이라고 믿는다.
물론 내가 판단하는 '나'라는 남자의 주관적인 남성스러움일 뿐이다.
연애 시절 아내가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했으니 증명되기도 했다.
내가 연약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원한다면 그런 여성을 찾으면 된다.
다만 내가 믿는 남성상이나 여성상을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누군가
'너는 왜 이러이러한 여성이 아니냐'라고 따지면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넌 왜 너냐'고 따지는 짓이다.
내가 나임을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대사를 살짝 바꿔보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처음을 잊지 말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 점이 바로 그 사람의 매력이자 여성스러움(남성스러움)이다.
다음으로 서로 인정하자.
성장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낱말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낱말을 강요하지 않을 때
부부의 평화회담은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