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너다|사랑의 조건

메마른 남자의 사랑실천기

by 반창고
사랑의 조건.png





난 정말 감각이 무디다.

다리에 상처가 생겨도

손가락이 갈라져도

방이 건조해도

불편한지 모르고 산다.




상한 우유도

상한 반찬도

상한 마음도

몰라서 그냥 먹는다.




감정적으로도 그렇다.

오죽하면 아내가 로봇이라고 했던가?

AI는 똑똑하기라도 하지

난 그냥 머신이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매일 '생활 장염'으로 고생하다가

이유도 모른 채 삶이 상해버렸을 것이다.

사랑하는 조건을 따지는가?

내가 부패한다고 알려주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주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나희덕 ‘부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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