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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Dec 01. 2020

첫 편지는 감정적이다

똑똑 잘 지내고 계시죠?



엄마,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엄마가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되네요. 

여기는 같으면서도 많이 달라졌어요. 

아버지는 요즘 악기를 세 개나 배우세요. 

기타, 우쿨렐레, 오카리나. 

아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바쁘게 사시지만 혼자 계신 밤마다 힘들지 않으실까 걱정이 돼요. 

어서 이사하셨으면 좋겠는데 아버지는 고통스럽지만 정리할 시간은 필요하다며 봄이나 되면 다른 곳에서 살겠다고 하세요. 

누구보다 긴 시간 엄마랑 함께한 아버지가 결정한 일이니 전 조용히 응원하고 있어요. 

자주 아버지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옛날 습관 때문에 저만 생각하고 바쁘게 사네요. 

어쩌면 본능적으로 전화하기 거부하는 건지도 몰라요. 

아버지에게 전화드릴 때마다 밥은 잘 잡수시느냐는 말에 머물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엄마가 계실 때도 아버지와 대화라는 걸 제대로 한 적이 없네요. 

참 무뚝뚝한 부자죠? 

수화기에 보낼 목소리에 자신이 없어요. 

아버지는 저를 마주할 때마다 더 엄마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게 위로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전화기를 들거나 끊을 때마다 잠시 멍든 마음을 달래야 해요. 

뭐 점점 나아지겠죠. 





최근에 동생들과 만났어요. 

동생들은 저보다 쉽게 아버지를 위로하는 듯해요. 

특히 둘째는 근처에 사니까 종종 저녁 식사를 같이 하나 봐요. 

무심해 보여도 누구보다 세심하게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어요. 

막내는 종종 주말에 가서 댁에 머물고 와요. 

막내는 어릴 때부터 정 많더니 누구보다 깊이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어요. 

아버지 힘드실까 건조기도 놓고 식기 건조대도 놓고 어제 삼 형제 통장을 보니까 회비에서 니트까지 샀더라고요. 

딸처럼 잘하죠? 

제가 오히려 동생들에게 많이 배워요. 

동생들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누구 아들? 엄마 아들들. 

동생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둘째는 아버지 미래를 걱정해요. 

아버지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오고 싶다고 확고하게 말했대요. 

전 그냥 아버지가 하시고 싶은 것은 모두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막내는 조금 반대하지만, 그냥 아버지 뜻대로 결정될 거예요. 

전 아버지가 후회 없이 사셨으면 좋겠어요. 

막내는 술을 조금 들어가자 계속 울었어요. 

격하게 울다가 때론 울먹이며 말하다가 새벽까지 그랬어요. 

둘째도 덩달아 우네요. 

엄마가 안 계신지 두 달밖에 안 되었다는 게 다시 실감 났어요. 

지내는 건 괜찮으냐고 서로 묻지만, 답은 시원찮아요. 

어른이 된 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사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괜찮은 척만 해요. 

달라졌으면 달라진 규칙에 따라야겠지만 

아직은 이른가 봐요. 

동생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속상하시겠지만 엄마가 위로해주세요. 

전 둔해서 괜찮아요. 





참! 엄마, 저는 아버지랑 처음으로 뮤지컬을 봤어요. 

둘만 그렇게 있던 건 약수터 사건 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엄마, 지금은 알까요?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저를 새벽에 깨웠어요. 

새 차를 산 설렘이 제게도 느껴졌어요. 

둘만 차를 타고 멀리 있는 약수터를 갔는데 저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왜 아버지는 동생들이나 엄마랑 가지 않고 저만 깨웠을까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고 좋았어요. 

물론 유턴을 하다가 보도블록에 차를 긁혀서 아버지는 속상하셨을 거예요. 

아무튼, 그때 이후로 둘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어색하진 않았어요. 

아버지는 처음 뮤지컬을 보셨다며 눈이 즐거웠다고 하셨어요. 

하긴 그 돈이면 저희 간식 하나라도 더 샀을 거예요. 

부모님께서 하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저희를 열심히 키우셨다는 뜻도 되니까 죄송했어요. 





저는 어떻게든 아버지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어요. 

집에만 있으면 생각이 나를 잡아먹잖아요. 

그런데 종종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를 잘해드릴수록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차올라요. 

진작 건조기도 놓고 엄마 대신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엄마, 아버지 모시고 뮤지컬도 보여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아버지에게만 그렇게 해드리는 게 효도를 하면서 불효를 하는 기분이에요.

왜 전 그걸 못했을까요. 

당연히 계실 거라고 믿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래도 엄마 아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계속 지켜봐 줘요. 

엄마, 오늘도 평온한 하늘 생활되세요.



-2020. 11. 30. 엄마 흔적을 많이 남기고 싶은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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