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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Dec 29. 2020

저는 많이 바뀌었어요.

보낼 수 없는 두 번째 편지

엄마 잘 지내시죠? 

멈출 것 같은 시간조차 계속 흘러요. 

어느새 연말이에요. 

올해는 정말 반갑지 않은 진상 손님이네요. 

엄마가 떠나고 제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어요. 

엄마가 들으면 속상하려나? 

그래도 전 좋은 성장이라고 생각하니까 웃으면서 들어줘요. 

엄마, 제가 더는 머리에 신경 쓰지 않아요. 

남들이 보든 말든 자연스러운 머리로 다녀요. 

왜 저는 남을 의식하며 살았을까 몰라요. 

이젠 더 중요한 것에 시선을 돌린 탓일까요? 

종종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면 엄마가 떠올라요. 

어린 시절 제 머리를 빗겨주며 예쁜 반 곱슬머리라고 했는데. 

그 스타일이 싫다고 고집만 피웠던 저를 살짝 꼬집어주고 싶어요.





엄마, 제가 이제야 죽음과 함께 살아요. 

예전에 스티븐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했던 졸업 연설을 들었어요. 

그는 죽음이야말로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고 해요.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라고 자문했대요. 

그날부터 저는 죽음과 가까이 지내려고 했어요. 

더 가치 있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죽음 껍데기만 만지작거린 느낌이에요. 

진짜 죽음은 엄마가 가르쳐주셨어요. 

물과 공기처럼 당연히 계신 엄마가 사라지면서 자연은 조화를 증명했을지 몰라도 저는 부조화된 자연을 품었어요. 

엄마는 제게 시작을 선물하고 늘 함께였다가 끝을 가르쳐준 하나뿐인 존재예요.





엄마, 천보묘원에서 마지막으로 엄마와 이별할 때 했던 약속을 기억해요?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다고 했죠? 

사실 그 뒤로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전 계속 크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글쓰기예요. 

이젠 희로애락을 글로 풀어요. 

예전에는 스스로 독려하며 쥐어짜듯이 글을 썼는데 지금은 평생 함께할 친구와 두런두런 대화하듯이 글을 써요. 

그중 하나는 깜냥이에게 주려고 작은 책을 써요. 

제가 갑자기 이 세상에 없어도 책이 저 대신 아이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만간에 꼭 원하는 꿈을 이루고 소감을 물을 때 감사할 사람으로 엄마를 찾을 거예요.

그리고 펑펑 울 예정이에요. 

그전까지는 절대로 엄마를 떠올리며 울지 않을 겁니다. 

서운하지 않으시죠? 

늘 지켜봐 주세요. 

이것 말고도 쓰기 힘든 크고 작은 변화가 제게 일어났어요. 

어른이 됐다고 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보기엔 전 아직도 어린가 봐요. 

무럭무럭 자랄게요.





참! 엄마, 코로나 19가 심해서 성탄절에 잡은 가족 모임을 어쩔 수 없이 취소했어요. 

그러고 나니 힘들어하는 아버지가 계속 생각났어요.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아버지만이라도 저희 집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죠. 

계속 거절하시다가 다행히 성탄절 날 오셨어요. 

엄마가 설득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고마워요. 

2박 3일 머물면서 아버지와의 어색한 조우가 많이 녹았어요. 

별로 할 말이 없었는데 제가 바꾼 “MC 되기”방법이 성공했어요. 

MC처럼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니까 아버지의 언 입이 녹았어요.

저녁에는 아버지와 엄마의 첫 만남을 물었어요. 

엄마는 전라도에 살고 아버지는 경상도에 사는데 어떻게 만나서 우리는 왜 서울에서 태어났는지 궁금한 것은 끝이 없었죠. 

아버지는 “첫 만남을 이야기하려면 옛이야기부터 해야 하는데…”하시면서 주저하시다가 입을 떼셨어요.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된 일대기, 아버지의 탄생과 우여곡절이 많은 집안사 그리고 엄마와의 만남. 

모든 게 영화였고 기적이었고 역사였어요. 

아버지는 눈빛이 반짝였고 얼굴에는 생기가 도셨어요. 

끝나고 나니 벌써 잘 시간이 되더라고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어요. 

여쭤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부모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서 녹음도 했지요. 

엄마가 부끄럽다고 하시겠지만, 아버지랑 엄마가 주고받은 편지도 제가 소장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정리하려고 했는데 제가 책을 쓴다고 하니까 저보고 가져가래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정말 많네요. 

이젠 직접 엄마에게 물을 수 없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 차근차근 써볼게요. 

소설이랑 에세이에서 또 엄마를 만날 생각만 해도 기뻐요.

도와주실 거죠? 

이번 달 편지는 이만 줄이게요. 

엄마!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2020년 12월 27일 엄마에게는 아직 어린아이인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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