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마리 컬쳐럴 파크 이야기
첫번째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코타키나발루가 속한 사바 주는 쿠알라룸푸르로 대표되는 말레이 반도와는 인종 구성이 크게 다릅니다. 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다양한 보르네오 섬 원주민들과 그들의 혼혈이며 말레이 반도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오히려 한자릿수 비율밖에 안 됩니다.
그러다보니 사바 주의 가정식에서는 원주민 전통 요리법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지만 코타키나발루 같은 관광지에서는 원주민 전통 요리들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차로 약 40분 가량 떨어진 정글에 위치한 마리마리 컬쳐럴 파크는 관광객들이 보르네오 섬 원주민들의 생활을 보고 재미있게 즐기며 전통 음식들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잘 짜여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용인 한국민속촌 같은 곳입니다.
영어나 현지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여행사를 통해, 영어가 익숙하고 여행 경험이 있으신 분은 저렴하게 직접 코타키나발루 북쪽 제셀톤 포인트를 방문하여 예약할 수 있고 호텔 앞까지 픽업, 데려다주는 서비스도 포함되어 방문은 편합니다. 2시간 반 정도의 투어와 30분 정도의 전통 춤 공연, 전통 요리 위주로 구성된 점심식사가 포함되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고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컬쳐럴 파크 내 가이드의 영어 설명이 매우 자세해서 영어가 익숙하시다면 특히 아주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마리마리 컬쳐럴 파크 자체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고 온갖 포스팅이 브런치 내 외에도 많으므로 저는 글의 주제에 맞게 전통 요리 문화 위주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두순족
두순 족은 사바 주의 원주민 부족 중 가장 큰 부족으로 원주민 인구 중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원주민 인구가 사바 주의 절반 정도이므로 단독으로도 인구의 1/4 정도를 차지해 중국계와 맞먹는 굉장히 큰 부족입니다. 사바 주에서는 두순 족이 북부를 선점하여 정글 생활보다는 논에서 벼농사를 하며 정착민적 생활을 했고, 따라서 농사와 농경식 요리 문화가 발전한 사람들입니다.
쌀 생산량이 많고 수렵채집의 비율이 비교적 낮았기 때문에 쌀로 만든 술과 요리가 발전했습니다.
먼저 두순족의 대나무술입니다.
누룩은 쌀가루를 빻아 익반죽을 한 뒤 빚어서 띄우는데, 누룩의 모양과 재료가 중국의 미향형 백주를 위한 소곡누룩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주에 쌀누룩을 저렇게 작게 띄우는 경우가 있는데 쌀 문화권끼리 누룩 제법이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두순 족의 쌀술은 의외로 중국 남부의 황주(黃酒)와 제법이나 숙성 방법이 비슷했습니다. 설탕과 약간의 나무열매(아마도 부패 방지와 약간의 향 첨가를 위해 조금 넣는 것 같았습니다)를 약간 더 넣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누룩과 주 재료가 쌀이며 술을 빚은 후 항아리에 봉해 장기 숙성시킬수록 품질이 더 좋아지는데 숙성된 술은 팔지도 않고 시음도 할 수 없어 경험하지 못하였으나 밀봉해도 산화가 일어나는 항아리에서 장기숙성한 술은 아마도 소흥주처럼 숙성되겠지요.
다음은 두순족의 대나무통 요리입니다.
두순 족은 벼 논과, 밭벼, 대나무가 많은 평지와 낮은 산간지역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풍부한 대나무를 이용해서 요리를 했습니다.
대나무 향과 바나나 잎 향이 은은하게 배인 감자와 타피오카 쌀 그리고 각종 야채는 담백하고 슴슴하며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순 족의 증류주입니다.
위에서 본 쌀술을 증류해서 만듭니다.
토기 항아리를 불 위에 놓고 술을 끓이는데 입구 쪽에 대나무를 대고 항아리 입구 쪽에 반으로 쪼갠 코코넛에 찬 물을 담아 올립니다. 술이 끓으면서 증기가 되어 올라오는데 이것이 찬물을 담은 코코넛 바닥에 이슬로 맺혀 대나무를 통해 내려오는 원시적인 방식의 소줏고리 방식의 증류기입니다.
증류기가 정교하지 않아 수율이 낮으며, 알코올 도수도 20도에서 40도 미만 정도로 낮다고 합니다. 시음용 술은 이미 물을 타서 15도 미만으로 낮춘 것이었으나 의외로 향이 중국의 미향형 백주와 비슷했습니다. 원주가 황주 비슷한 방식의 제법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요. 물을 타지 않은 원주도 맛보고 싶은데 그건 안 되더군요. 기념품 상점에서도 팔지 않았습니다.
두순 족의 아궁이
두순 족은 농경민족이기 때문에 집에서 아궁이로 요리를 하는데 이 아궁이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집 안에 아궁이가 있는데 집과 밖을 연결하는 가장 바깥 방에 위치하고 연기가 빠지기 위해 지붕은 있으되 3방향이 트여 있습니다. 비가 자주 오니까 지붕을 두고 요리를 한 것 같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선과 고기, 채소를 훈연하여 말리고 맨 윗칸에서는 뜨거운 공기로 장작을 말리는 구조입니다. 비가 많고 습해서 자연적으로는 장작이 잘 마르지 않으며 겨울이 없어 난방용 장작이 필요없기 때문에 장작 소모량이 적어 가능한 현명한 방식입니다.
2. 렁구스 족
렁구스 족은 보르네오 섬에서 4번째로 큰 부족집단입니다. 부족 이름은 키나발루 산 정상에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을 땄으며, 고산 부족들입니다.
렁구스 족은 여자들이 불 피우는 법을 배워야 시집을 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방법이 굉장히 세련되고 어렵지 않습니다. 큰 칼로 대나무에 칼집을 내고 그 아래에 잘 말린 대나무 속껍질을 깐 다음 대나무 칼집에 칼을 꽉 끼운 채로 문지르면 마찰열로 순식간에 불똥이 나옵니다 그걸 잘 불어주면 되는데 여자들도 방법만 알면 5분이면 불을 피울 수 있습니다
보르네오 섬에는 찰옥수수 품종이 없고 스위트콘이어서 어떤 옥수수라도 과일처럼 달고 즙이 많아 맛있습니다.
3. 바자우 족
바자우 족은 보르네오 섬에서 두번째로 큰 부족집단입니다. 500여년 전에 필리핀에서 건너왔습니다.
이들은 독특한 디저트 문화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4. 런다예 족
이들은 적의 머리를 베어 전시하는 head hunter 풍습으로 유명한 부족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야채와 얌, 타피오카를 쪄 먹는데, 타피오카는 감자와 고구마를 섞은 듯한 식감에 단맛과 분이 없는 감자 같은 맛입니다.
5. 식재료들
고추, 오크라, 호박, 오이, 감자, 사탕수수, 판단 잎, 레몬그라스, 바나나, 바나나 꽃, 하귤, 생강 등 다양한 식재료를 재배하거나 채취하며 다양한 열대과일과 생선, 돼지고기도 먹습니다.
투어가 끝난 후 전통 요리 위주의 뷔페 식사도 있으며, 기념품점에서 테이스팅했던 전통 꿀, 술 등을 판매하는데 의외로 예쁘게 잘 꾸며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