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라이프치히 평화 혁명과 독일 통일 이야기
유독 이맘때가 되면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거리의 공기도 싸늘해지는 것 같다. 오늘은 10월 9일. 저녁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친구들과 라이프치히 시내의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으로 나섰다. 찬기운 탓인지 대기의 습한 공기가 땅위에 내려앉아 몽글몽글한 이슬방울로 맺혀있었다. 거리는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광장은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은 불 밝힌 초를 하나씩 손에 들고 서있었다.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매년 10월 9일 이렇게 광장에 모여 빛의 축제(Lichtfest)를 맞는다.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 일어난 평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 시내 중심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열리는 평화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성직자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수년 전부터 매주 월요일 이 평화 기도회를 열어왔다. 시민들의 의사표현과 모임을 철저히 통제하고 탄압하던 당시 이 기도회는 시대를 위해 기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되어주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눈에 든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 기도회가 점차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장으로 확대되자 정부의 탄압이 가해졌다. 기도회의 주축 멤버들이 구속되는 일이 연이었다. 당시 89년에는 이 기도회뿐만 아니라 동독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크고 작은 저항이 계속되면서 사회적인 긴장이 점점 고조되어 갔다. 동독 건립 40주년 기념일이었던 10월 7일에도 4,000여 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그중 200여 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회주의 이상 국가 건설의 꿈이 40년 만에 막을 내릴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을까? 이틀 전의 소요사태로 인해 평화 기도회가 열리는 10월 9일 당국은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그날의 평화기도회는 기도회 후 거리시위로 이어질 계획이었기 때문에 당국은 더 큰 소요사태가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 이 때문에 당일 니콜라이 교회 주변에는 8천여 명의 경찰과 군병력이 배치되었고, 라이프치히 시내 병원에는 응급환자를 위한 의료진과 수혈용 혈액이 준비되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4개월 전 발생했던 중국 천안문 사태 소식을 알고 있던 터라 그와 같은 유혈사태가 라이프치히에서도 일어나지는 않을지 모두들 두려워했다. 평화 기도회에 참석했던 한 시민은 기도회를 마치고 거리로 나서기 직전 '이 문을 나서면 자신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날 평화 기도회를 전후해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니콜라이 교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수는 더욱 불어나 7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교회 주변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웠다. 평화 기도회를 마친 후 시민들은 다 함께 “우리가 인민이다! (Wir sind das Volk!)”, “폭력 반대!”,“자유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며 라이프치히 시내를 행진했다. 당시 동독 경찰과 군대는 각각 인민경찰 (Volkspolizei), 국가 인민군 (Nationale Volksarmee)으로 불렸는데, 시민들은 경찰과 군인들에 저항하며 “너희가 탄압하는 우리가 바로 인민이다”라는 뜻으로 이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당국은 시위대에 대한 무력 진압을 포기하고 경찰과 군병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때문에 당일의 시위는 사상자 없이 평화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라이프치히의 시위 규모는 점점 커져 10월 23일에는 20만 명, 11월 6일에는 3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라이프치히에서 일어난 시위의 불길은 동베를린을 포함한 동독 전역으로 빠른 시간에 번져나갔다. 결국 한 달 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1년이 지난 1990년 10월 3일에 동서독의 통일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89년 라이프치에서 시작된 평화혁명이 독일 통일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올해 빛의 축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만 오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용기-가치-변화”(Mut-Werte-Veränderung)라는 모토 아래 함께 촛불을 밝혔다. 라이프치히는 빛의 축제를 통해 평화 혁명의 정신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의 메시지를 유럽과 전 세계에 전하고 있다. 올해는 라이프치히 발레단의 춤과 동독 출신 배우 질베스터 그로스(Sylvester Groth)의 연기가 어우러져 89년 평화 혁명을 형상화한 기념 공연이 한 시간 가량 펼쳐졌다. 그리고 축제의 피날레로 모든 참가 시민들이 손에 들려있는 촛불을 한데 모아 숫자 89를 만들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인종도 배경도 다양하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만은 한 곳에 모여진 촛불처럼 동일한 듯했다. 나 또한 그 평화의 기원에 동참하고 싶어 촛불을 쥔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눈을 잠시 감고 89년 그날을 생각하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 당시 새 시대를 갈망하며 자유와 평화를 외치던 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라이프치히 시내에는 89년 당시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번 빛의 축제에 참여하고 나서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기념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기념비들은 당시 시위가 일어났던 주요 장소에 세워져 그때의 상황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놓았다. 기념물들에 새겨진 번호를 따라 그때 시위대가 행진했던 길을 그대로 걸어볼 수 있다. 시위대의 행진 코스 중에는 당시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의 라이프치히 본부 건물도 위치해 있다. 시민들에 대한 감시와 검열을 통해 동독 정권의 공포정치를 가능하게 했던 슈타지의 라이프치히 본부는 89년 12월 4일 시민들에 의해 접수되어 이후 해체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이 곳은 슈타지의 당시 활동과 89년 평화 혁명의 역사를 알리는 박물관으로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ㅣ슈타지 박물관 앞에 서있는 평화 혁명 기념비(좌)와 슈타지 본부를 접수하던 당시 모습(우) I
I 라이프치히 슈타지 박물관. 동독 시절 권력의 심장부 같은 곳이다 I
라이프치히 평화 혁명의 현장을 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89년 10월 9일 거리에 나섰던 사람들은 과연 그들의 시위가 평화 혁명으로 귀결될지 기대할 수 있었을까? 공포의 대상이었던 슈타지가 그렇게 맥없이 무릎을 꿇고, 동서독의 장벽이 그렇게 빨리 허물어질 줄 상상이나 했을까? 분명한 건 그때 그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았으면, 지금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데는 동독 관리의 실수와 외신들의 오보도 한몫했다. 시위가 거세지자 동독 정부는 해외여행 절차를 간소화하는 여행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그런데 기자 회견장에서 담당 대변인의 말실수와 외신들의 과잉해석으로 즉시 국경을 개방하는 것처럼 보도가 되었다. 보도를 본 동베를린 주민들은 그날 밤 바로 서베를린으로 가는 검문소로 모여들었고, 급작스런 상황에 국경수비대는 그만 국경을 개방해버렸다. 수십 년간 동서를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일시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동서독 정부도 시민들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 우연적 사건이 어우러져 한 사람의 인생사를 이루듯이, 독일의 통일도 필연과 우연이 만나 세계사적 사건을 이룬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남북한의 통일도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이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더 가까이 와 있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통일과 평화의 성취가 머지않아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기를 염원한다.
"빛의 축제는 1989년 라이프치히에서 대단한 일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훌륭한 기회입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고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들을 회상하며 향수에 젖어있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또한 사람들이 함께 행동할 때에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운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합니다! "
<10월 9일 공연에서 배우 질베스트 그로스의 인상적인 대사 한 대목>
글: 최인혜 ㅣ leipzig.korea@gmail.com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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