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만선> 리뷰

변화하는 시대, 변하지 않는 비극성

by 한겸


곰치: 변하지 않는 비극의 주인공

2025년의 <만선>(천승세 작, 윤미현 윤색, 심재찬 연출)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완강한 고집으로 표현되는 곰치(김명수 분)의 캐릭터이다. 곰치는 자신의 신념과 생존 방식에 대한 집착을 상징하며 한국 근현대 연극의 비극의 주인공 중 하나로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명수는 곰치를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못하는 인물로 표현한다. 특히 자신 덕분에 다른 배들까지 부서(보구치) 떼로 만선을 이루었을 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어업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이를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곰치에게 뱃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행위로 다가온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자부심은 점차 만선을 향한 집착으로 변질되며, "만선을 이루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신념은 변화하는 시대와 충돌하며 곰치를 몰락으로 이끈다.


무대 위 기울어진 배의 형상은 곰치가 신봉하는 가치 체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곰치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며 현대화된 어업 방식을 도입하려는 아들과 갈등을 빚고, 자본화된 산업 구조 속에서 변화하는 선주와의 관계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곰치를 점점 더 불리한 위치로 몰아넣는다.


곰치를 압박하는 선주 임제순(김재건 분)은 흰옷을 곱게 차려입고 마음씨 좋은 노인의 행세를 하고 있지만, 교묘한 언변은 곰치의 집착을 이용하는 착취 구조의 본질을 드러낸다. 임제순은 곰치가 끝까지 신념을 지키는 모습을 조롱하듯이 마지막 희망마저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다. 원로 배우 김재건은 이러한 간악한 자본가의 면모를 노련한 연기로 표현하며,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임제순의 간계에도 곰치는 벼랑 끝으로 몰릴수록 맹목적으로 만선만을 좇는다. 이러한 그의 아이러니한 행동은 비극의 전조가 된다.


고전 비극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성격 결함(하마르티아, Hamartia) 때문에 파멸을 맞는다. 곰치의 성격 결함은 과도한 신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이 믿는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현실을 끝까지 부정한다. 하지만 고전 비극에서 주인공은 신의 뜻에 의해 몰락하지만, 곰치는 산업화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개인의 의지가 무너지는 형국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곰치는 고전 비극과 근대 비극의 요소를 모두 지닌 인물이 된다.


곰치를 보면 아서 밀러의 미국 리얼리즘 비극 <세일즈맨의 죽음> 속 윌리 로먼이 떠오른다. 윌리 로먼도 낡은 성공 신화를 고수하며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몰락하는 인물이다. 두 인물은 가난과 고된 노동의 무게를 짊어진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려 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신념이 오히려 가족을 파멸로 이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곰치와 윌리 로먼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변화의 조류 속에서 도태되는 소시민의 비극을 보여준다.


극의 결말에서 무대를 무너뜨릴 듯이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과 파도를 꿋꿋이 맞고 서 있는 곰치의 모습은 풍파와 같은 삶의 역경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겠다는 곰치의 의지를 보여준다. 곰치는 널쪽만 있으면 바다로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자식과 전 재산을 잃고 홀로 남은 자신의 신세가 바로 망망대해 위를 홀로 떠도는 널쪽과도 다름없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곰치는 자신의 몰락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로 인해 비극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결국 곰치의 파멸은 변화 앞에서 시대착오적 신념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낡은 세계의 종말을 고하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구포댁: 숙명을 끊어내려는 처절한 몸짓

2025년의 <만선>은 곰치의 서사로 극의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여성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부각한다. 구포댁(정경순 분)의 연기와 각색된 슬슬(강윤민지 분)의 서사는 곰치의 아집이 초래한 비극에 한층 더 깊은 층위를 형성한다.


구포댁은 이미 세 아들을 바다에 잃은 기억 속에서 뱃일을 지긋지긋하게 여긴다. 그러나 곰치는 막내아들마저 열 살이 되면 그물 손질을 가르치겠다며, 당연히 가업을 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들들을 단순히 “가업을 잇기 위한 존재”로 여기는 곰치의 태도는 부부의 평생 갈등 요소였다. 배가 무리한 조건 속에서 출항하게 되자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힌 구포댁은 아들 도삼(황규환 분)에게 배에 타지 말라고 간절히 애원하지만, 만선을 이루고 말겠다는 곰치의 집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구포댁의 치성 장면이 강렬한 연출로 강조된다. 천둥소리와 함께 조명의 암전과 점등이 반복되며 거친 바다의 날씨가 구현된다. 이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식을 지킬 수 없는 절망이 어떻게 극한으로 치닫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조명의 명멸(明滅)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강조하며, 관객이 구포댁의 심리를 직접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바다는 인간의 뜻을 초월한 공간이며, 구포댁의 기도도, 곰치의 욕망도 결국 거대한 파도의 포말 아래 덧없이 흩어질 뿐이다.


도삼을 잃은 후, 정경순은 광기에 사로잡힌 구포댁을 헤카베적 캐릭터로 형상화한다. 트로이 전쟁에서 모든 자식을 잃고,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살해당한 헤카베처럼, 구포댁 또한 막내만큼은 제 명대로 살게 하겠다는 절박한 결심으로 갓난아기를 홀로 배에 띄워 보낸다. 이는 단순히 광기에 비롯된 행동이 아니라, 남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자 반복되는 비극을 끊어내려는 선택이다.


정경순의 섬세한 연기는 남편의 아집이 만들어낸 비극 속에서, 자식을 지킬 수 없는 어머니의 무력감과 절망이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을 포착한다. 도삼을 잃은 후, 하늘을 바라보는 형형한 눈빛에는 자식이 결국 바다에서 죽을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직감과 함께 그럼에도 끊임없이 바다로 나갈 아이를 낳아야 했던 모성의 숙명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다.


그러나 극의 결말에서 퍼붓는 물벼락을 곰치와 함께 맞고 서서 끝내 그에게 그물을 건네는 이도 구포댁이다. 구포댁의 힘없는 손짓에는 어쩔 수 없는 체념이 서려 있다. 기성세대의 기혼 여성으로서 구포댁은 끝내 곰치를 떠나지 못하고, 남편이 초래한 파국을 끝까지 함께하기로 선택하며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슬슬: 세대를 거치며 변화한 저항 방식

2025년 <만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캐릭터는 슬슬이다. 연철(성근창 분)과의 연애 장면이 추가되면서, 그가 연철과 함께 꿈꿨던 삶이 한층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에 따라 범쇠(박상종 분)가 빚 이만 원과 슬슬을 맞바꾸자는 제안을 했을 때, 슬슬의 감정 변화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공연에서는 가족을 위해 거래의 대상이 된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슬슬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강윤민지가 연기하는 슬슬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빚을 갚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치욕감에 깊이 괴로워한다.


그러나 슬슬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범쇠의 제안 그 자체만이 아니다. 곰치와 도삼, 성삼(김종칠 분)은 겉으로는 슬슬을 지키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범쇠의 거래를 계속 입에 올리며 슬슬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의 발언은 슬슬은 보호해야 할 가족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슬슬 이외에 이 상황의 폭력성을 온전히 인식하는 인물은 구포댁과 연철뿐이다.


원작에서 슬슬은 범쇠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후 스스로 목을 매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범쇠를 낫으로 위협하다가 돌으로 내려쳐 살해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범쇠는 배를 소유한 자본가이자, 슬슬과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사회 구조의 억압을 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곰치가 신념에 매몰되어 사회의 억압 속에서 몰락했던 것과 달리 슬슬의 행동은 사회 구조에 맞서는 적극적인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슬슬은 자신을 대상화했던 폭력의 가해자를 스스로 제거하며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존재로 자리한다.


이러한 슬슬의 서사 변화는 구포댁과도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세대에 따른 여성 캐릭터들의 억압에 맞서는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구포댁은 기도와 염원을 통해 운명을 바꾸려 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남편과의 삶을 받아들이며 다소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슬슬은 자기 파멸에 이르는 결말을 맞지만 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구포댁과 슬슬의 대비는 여성 캐릭터들의 변화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세대를 거치며 운명에 저항하는 방식이 어떻게 확장되고 변화하는지를 시사한다.


극 중에서 슬슬은 “무엇을 위한 만선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가족을 파멸로 이끈 아버지의 욕망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착취의 도구로 기능하는지를 조명한다. 나아가 사회와 가정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모하는 방식도 강조된다. 이를 통해 극 중 여성 인물들이 시대적 한계 속에서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부각된다.


연극 <만선>은 고전적 비극 서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여성 캐릭터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고전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196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사회 구조적 폭력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연극이 던지는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고전이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 연극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곰치의 서사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와 억압적 구조 속에서 전통과 신념이 지속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동시에 슬슬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약자가 기득권의 착취 구조에 맞서는 방식이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보여준다. 2025년 <만선>은 비극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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