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 Aug 10. 2021

재택근무 19개월 차,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의 시작

     집에서 일한 지 1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2020년 2월 긴급 2주 재택근무 공지가 공유된 후, 사무실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2021년 8월이 되었다. 일하는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모든 업무와 출장은 스크린으로 대체되고 동료들과의 회식 역시 각자의 집에서 이뤄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 한 잔 들고 옆 방으로 건너가 9시 회의에 참석하는 루틴이 익숙해졌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인구밀집이 높은 최전선에서 일해야 하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걱정도 점점 커져갔다. IT업계 특성상 COVID-19 영향이 적거나 오히려 더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어떤 면에서 불공정하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재택근무 초기에 큰 힘이 되어준 반려식물 율마    

     코로나 블루는 없었다. 그보다는 느낄 새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재택근무는 상상할 수 없는 산업군에서 일하는 가족의 건강이 항상 염려되었다. 작년 봄부터 COVID-19 여파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거나 소중한 밥벌이가 사라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었다. 전례 없는 상황 앞에서 삶의 근간이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종종 괴로웠다. 감염된 가족들의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들을 스크린 너머로 확인할 때마다 역병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부부가 두 아기들을 돌보면서, 정부 가이드라인상 베이비시터를 집으로 들일 수 없는 상황도 많았다. 평생 NHS에 헌신하고 은퇴한 가족들이 의료진의 부족한 보호장비를 손으로 만드는 봉사활동으로 바쁘다는 소식 역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의 의료진들이 부담하고 있는 커다란 노고 그리고 방역에 힘쓰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 반 무임승차하는 기분으로 작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비대면으로 오고 간 꽃

       백신 접종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각 나라의 방역대책을 지켜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뭣이 중헌디?’라는 삶의 펀더멘탈을 고민하는 질문이 더 깊고 진득해졌다. 이 물음표는 평생 가져가야 하는 숙제로 남아있지만 그동안 당연히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들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상 서울에서 락다운을 겪지 않은 환경에 놓인 성인 두 사람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매일 양말을 신듯이 마스크와 함께 밖에 나선다. 가끔은 해외로 예정되었던 여행과 출장을 심정적으로 그리워하는 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고 딱히 어딘가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는 못했다. “와, 우리 지금쯤 보스턴에서 같이 와인 마시고 있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이 시간쯤 런던에서 파티하고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 섞인 건 그저 가족과 나누는 사치스러운 농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족의 중요한 행사들은 스크린 너머로 함께할 수 있었다. 살을 부딪히는 친밀함이 그립기는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대체로 건강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지냈다.


 열매가 열린 반려식물 무화과나무

    계획된 것을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오히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출퇴근이 생략된 덕분에 여유 시간이 체감상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집이 일터로 변한 만큼 일과 쉼을 분리하는 데에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했다. 업무 스트레스로 녹초가 되어 집에만 있었던 날에는 다음 날 업무를 하기 힘들 정도로 컨디션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운용 가능하거나 1on1 레슨이 필요한 취미생활에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다. 퇴근 후에 일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고자 소소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재택근무 초기에는 식물에게 물을 주는 일상의 루틴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집에서 화초를 가꾸거나 꽃을 더 자주 만지고 주변에 선물했다. 이렇게 업무 이외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일상적인 무력감을 떨칠 수 있는 루틴을 하나씩 만들어갈 수 있었다.

    

     최근 회사에서는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 변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요지는 현재의 판데믹 상황이 종식되더라도, 사무실을 기반으로 한 업무는 선택사항이라는 것.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몇 번 일할지는 업무에 따라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변이 바이러스와 개인적인 변화로 사무실에 돌아갈 날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업무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주 1, 2회 사무실에 가는 루틴을 선택하고 싶다. 이 선택지가 앞으로 내 일상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앞으로가 더 궁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All Day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