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우리는 예식을 생략하고 그 에너지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둘 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편이어서 결혼 비용을 아껴 둘이 오래 살게 될 집을 고치거나 튼튼한 차를 사고 싶었다. 그 결심의 일환으로 벚꽃이 흐드러진 어느 봄, 제주의 숲 속에서 둘만의 약속을 했다. 서울에서 출장 온 감각적인 작가님 덕분에 드론으로 Pre-Wedding film과 인터뷰 영상도 남겼다.
제주의 봄날, 언약식
하지만 막상 ‘결혼’이라는 대소사가 닥치자 마음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앞선 문장들은 모두 대과거형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라왔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길고 깊게 만나는 시간을 만드는 게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민 끝에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서울’에서 공식적인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다 같이 친구가 되어가는 ‘환대의 시간’을 주제로 둘만의 축제를 기획하기로 했다.
제주 숲에서 우리 둘
결론은 3일 간 6번의 공식적인 파티를 치르게 되었다. 결혼식 전날 열리는 환영 파티, 1,2부로 나누어진 하우스웨딩, 3부 애프터눈 티 파티, 4부 한옥 애프터 파티, 서울 + DMZ 여행 후 작별 파티로 구성했다. 추후 직계가족이 함께하는 제주와 도쿄 여행이 추가되었다. 양가의 하객 리스트를 꾸리고 나서야 축제의 향방이 명확해졌다. 부모님 하객을 제외하고 가족과 소수의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결정했다. 1,2부는 최대 200명이 파티 분위기로 동시 예식 가능한 공간을 찾았다. 피앙세의 가족과 친구들은 영국, 미국, 독일, 폴란드, 홍콩, 싱가포르, 카타르 등지에서 한국행 비행기표를 미리 예약했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었고, 25인승 미니버스에 모두를 태우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동하는 루트를 짰다. 서울에 여유롭게 머물다 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Part 1, 1부의 시작
피앙세 엄마가 만든 링쿠션
"그래, 둘 다 초혼이니까 식이 크고 풍성해도 괜찮아"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우리의 축제를 꾸리기 시작했다. 우리 다운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대화가 아름답게 공명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여러 장소를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가장 우리와 닮은 베뉴를 찾기 위해 3주 간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어 돌아다니던 기억이 벌써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피앙세는 이 모든 준비 과정이 마치 새로운 곳에 여행 온 것처럼 즐겁다고 했다.무엇보다 공간을 결정하는 여정마다 우리는 잘 모르던 서울의 아름다움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결혼식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나도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웠다. 일생일대에 한 번 코르셋을 바짝 조이는 공주놀이 역시 놀라운 경험이었다. 공간의 꽃 색감과 화형을 정한 뒤, 4벌의 드레스와 4개의 부케를 고민하고 스타일링하는 게 흥미로웠다. 난생처음 메이크업을 받고 손톱과 발톱을 누군가에게 맡겼을 때의 사치스러운 기분도 잊지 못한다. 본식 드레스는 "관능적인 여름 신부"를 키워드로 시원하게 뚫린 디자인을 피앙세와 최종 선택했다.
Part 1,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하고 행진하던 순간
Part 2, 반가운 얼굴들이 가득했던 2부
지난 3개월 간 우리의 역할은 공동 PM이었다. 양가 모두가 환대받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주말마다 머리를 맞대었다. Project Management 업무량은 회사에서 진행하던 일에 견줄만했다. 사실 마지막으로 맡았던 작은 콘퍼런스 준비보다 더 큰 예산이었다. 다행인 것은 서로가 수긍하는 총예산이 비슷했다. 가용 범위 안에서 서로의 우선순위를 협의한 뒤 예산을 분배했다. ‘결혼식’이라는 공동 기획을 하면서 어떻게 상호보완적인 팀워크를 할 수 있는지를 같이 알아가고, 각자의 제안서를 설득시키기 위해 뜨거운 발표를 서로 나눴다. 소비의 구간마다 우리가 나눈 가열찬 토론은 Big Day에 대한 기대로 들뜨게 했다. 호기심이 많고 엄청나게 꼼꼼한 파트너는 견적 비교 파일 만드는 것이 취미이다. 그가 원 단위로 만든 열몇 개의 엑셀 파일에 대해서는 도움이 될만한 사항을 정리해 이곳에 천천히 공유하려고 한다.
Party 3, 도란도란 Afternoon Tea Party
결혼식이 끝난 지금 드는 생각은 ‘감사’ 뿐이다. 아끼는 이들이 어떻게 우리를 위해 아름답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까? 눈물로 축하해준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마음에 뜨겁게 지나간다. 애프터 파티를 멋진 해금 연주로 열어준 엄마, 클래식 기타로 찡한 곡을 연주해준 우리 오빠, 시차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밝은 얼굴로 축하해준 가족과 친구들, 식 전체를 Beatles 선곡으로재즈 연주해준 멋있는 친구들, 힘찬 목소리로 한국어/영어 사회를 맡아준 두 친구들,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감미로운 친구의 축가, 아침부터 밤까지 통역을 맡아준 아끼는 언니, 드레스코드 Green 원피스와 꽃과 풀 색깔에 맞는 옷을 입고 아침부터 밤까지 자리를 지켜준 사랑스러운 친구들에게도 정말 사랑하고 고맙다는 감사를 다시금 전한다. 긴 축제의 여정에서 언제나 설레는 눈빛으로 굳건한 믿음을 보여준 파트너에게도 깊은 사랑을 전하고 싶다.
Part 4, 눈물 가득 흐르던 밤
와, 지난 2주간 몸과 마음이 정말 바쁘고 분주했다. 먼 곳에서 온 가족들과 어제 긴 식사를 마치고 오늘 아침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토록 벅차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내게 일어났었다는 것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한 여름밤의 꿈을 꾼 것처럼 얼얼한 기분이다. 내일 허니문 떠난 후 푹 쉬고 돌아와 뭉클하던 순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