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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 Aug 14. 2019

결혼, 그 두려운 행복

낯선 여정의 출발

     어느 여름, 바닷가 근처에 사시는 친구 부모님 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친구가 유년 시절을 보낸 방에 들어서자 창 밖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마당을 배경으로 친구의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다정한 부모님과 익숙한 세 동생들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고, 사진으로만 상상했던 오래된 시간들이 은은하게 그려졌다.   

피앙세가 어릴 때 쓰던 방에서 바라본 풍경

     부모님의 존재가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온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주 이질감을 느꼈다. 내게 부모님의 사랑은 조금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두 분의 일상은 마치 서로 다른 악기로 볼륨을 높여 연주하는 불협화음 같았다. 분명히 좋은 부모님이었지만 서로를 아껴주는 부부는 아니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둘 사이에 사랑이 흐르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 쉬워 보였다. 특별하게 불행한 일은 없었지만 잔잔한 갈등이 산적한 현실이 내게는 가족이었다. 그림 같은 가정은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직조된 드라마로 존재했다.

네 형제와 아버지

     그 날 이후 비범하고 평범한 풍경을 보는 날마다 자주 눈이 따가워졌다. 그 대상은 근사하고 유명한 작품이나 자연 풍광이 아니었다. 길가다 웃음 가득한 가족들을 보게 될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타지에서 혼자 힘들게 살고 있어서 흘러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안개 낀 마당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게 꿈이었던 나에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 20대에는 강한 자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특별한 개인이 되고 싶었다. 자유와 창조를 지상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예술가와 작가들을 열렬하게 동경했다. 투명한 꿈 혹은 허영 덕분에 20대는 원 없이 아름다운 여행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때 사랑하던 아름다운 것들은 다양한 문화에 나를 힘껏 밀어 넣게 만든 커다란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 가정을 가꾸는 건 나와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런던 외곽에서 지내던 월세 £300 방 한 칸

     결혼은 자유의 종말이며 가능한 피해가거나 미뤄야 하는 가치라고 다소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즈음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정 반대의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비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 삶을 간절히 원하는 열망을 저 깊숙이 묻어두고 있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부모님의 관계가 얼마나 단단하고 강한 책임감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도 뼈아프게 배웠다. 지금은 두 분의 긴 숭고한 시간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감사한다. 

해가 사라진 시간

    3년 전 그 날, 고향 마을의 해안가를 달리던 남자 친구는 현재 약혼자로 곁에 앉아있다. 둘 사이에 아름다운 감격이 피어날 때마다 이 창을 처음 보던 날을 자주 생각한다. 가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차이가 생길 때에도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제는 그 날 창 앞에서 나를 찌르던 결핍이 무엇인지 이상 확인하지 않는. 창 밖에 비친 맑은 햇살 덕분에 나 자신이 많이 변했음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올봄, 마음 한 구석의 어둠과 천천히 작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삶을 합쳤다. 우리의 앞 길 가운데 궂은날이 찾아오더라도 해맑게 헤쳐나갈 미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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