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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알이 Oct 21. 2023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시간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 한 달이 지났다.

40년 가까이 답을 알지 못하고 앓아야만 했던, 답을 찾아 헤매기만 하다 결국은 포기했던, 사소하게 시작했지만 커져만 가던 증상들에 대한 답을 쓰러지고 나서야 찾았다.

증상이 조금 불안하다 싶었던 지난여름엔 병원 진료를 받고 심장 쪽 검사를 진행하자 해서 해 볼 수 있는 검사를 다 진행하고도 답을 찾지 못했는데 말이다.


답을 찾은 대가로

평생 먹어야 할 약이 생겼고,

더 이상 추가되길 원하지 않는 병명이 추가되어 버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기만 했던, 답을 찾고 싶어 했던 증상에 대한 병명은 뇌전증이었다.


무탈한 하루가 불안했지만 그 무탈을 즐기며 살아가던 시간이 이제 다시 내 것이 아님이 나를 주저앉혔다.

별것 아닌 것 같은 보통의 삶을 마치 이상향이나 되는 듯 살아온 나에게

내 인생은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졌고, 잔인하기만 했다.


병원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올 때마다

내가 견뎌내며, 또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같이 살아가야 할 일임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과 친구는 지금이라도 원인을 알았으니 다행으로 생각하자며 다독이지만

이제 다 지나왔겠으려니 하며 안도했던 나에게 기어이 또 다른 무언가를 던지고만 내 인생에 대한 분노와 우울이 가시지 않고, 그 분노와 우울이 나를 잠식해 버린 지금이 버겁기만 하다.

그 긴 시간 동안 쓰러짐 없이 나를 괴롭혀 왔던 게 병이었다면, 그냥 그렇게 죽을 때까지 그 정도로만 괴롭힐 수는 없었던 건지,  왜 결국은 이렇게 쓰러뜨리고야 말았는지....


퇴원 후에도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과

회복되지 않은 컨디션의 문제인지, 약의 부작용인지 모르는 무기력.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정밀검사를 해보면 기억 손실이 확인될 거라는 의사의 한방.

쓰러지고 난 후의 문제로 온 흡인성 폐렴.

수술의 여파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혹여나 또 쓰러지게 되더라도 폐렴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공포.

폐렴 때문에 검사한 폐 CT에서 확인된 게실.

마지막 수술이 게실절제였는데, 새롭게 생긴 게 아닌지 확인해봐야 하는 숙제.

새롭게 생긴 거라면 절제술이 뒤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의료진의 결정이 필요한...

혹여나 짐이 될까, 가족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 나의 지금이다.


평온한 듯한 일상을 되찾기엔, 내가 나를 받아들이기엔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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