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왜곡, 역할 그리고 공유
남자 주인공인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클레멘타인을 사귀었던 기억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조엘은 라쿠나사를 통해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데 막상 이 기억 들쳐내고 지우려고 하니 뭔가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집중력 있게 볼 수 있을 때 봐야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항상 저장 목록에만 등록되어 있었고 쉽게 재생되지 못했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 나는 영화를 연달아 두 편을 볼 수 있을만한 시간과 체력이 되어 위 영화를 재생했다. 소문으로 들은 것과 마찬가지로 영상미와 음악이 좋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이 영화는 나에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주었다.
“ 네가 생각하는 기억 그것은 무엇이니? ”
대부분의 헤어짐에 관한 공식처럼 클레멘타인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좋아 만났던 조엘은 그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조엘의 관점으로 본인들이 어떻게 만났고 즐거웠으며 헤어졌는지를 말했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클레멘타인도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는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우리의 눈과 머리를 통해서 기억하기 때문에 서로가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를 다양하게 봤다. 더군다나 조엘은 바로 눈앞에 있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오래 지난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말했다. 클레멘타인에게는 억울할 수도 그리고 행복했을 수도 있던 기억이 조엘의 관점대로 왜곡되었을 확률이 클 것이다고 생각이 되니 헤어짐을 말하고 슬퍼하는 그에 대한 동정심이 조금은 사그라지게 되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가 만났던 기억을 지웠고 서로를 미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마음의 이끌림이 서로를 향하기 때문에 다시 만남을 갖기로 하며 영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너희 만남 이렇게 시작해도 되는 거니?
어른들은 연애에 관해 항상 말씀하시는 게 있다. 다양한 사람과 많은 연애를 해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은 연륜과 지혜가 묻어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온 세대, 언어, 성향 등의 환경이 다르기에 상대방과의 만남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양보와 다툼 그리고 인내와 만남을 반복하다 보면 헤어지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럴 때 상대방과 만나면서 생겼던 나쁜 기억은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한 중요한 데이터 베이스가 된다. (좋은 사람이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헤어지고 상대방과의 기억을 잊고 싶어 기억을 항상 지우게 된다면 타임리프 영화처럼 바보 같은 사랑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쁜 기억을 발판 삼아 서로에게 맞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기를
아 그리고 위 영화에서는 조엘의 뇌를 통해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만남에 관해서 볼 수 있었다. 조엘만의 기억이 아닌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기억 말이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나사의 직원분들은 클레멘타인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라쿠라사의 한 직원은 클레멘타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기도 하는 장면도 보인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무게감 있게 비춰지지 않았지만 만약 위 영화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보며 삭제를 하는 의료 행위가 행해진다면 당사자 뿐만 아닌 상대방의 정보 공개에 대한 동의도 받아야 되는 윤리적인 문제까지도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정확한 기억이 아닌 조엘의 관점에서 왜곡된 기억을 말이다. 클레멘타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이 나쁠만한 일이다.
상대방과 나와의 기억, 타인에게 절대 쉽게 공유되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