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사람이 없다니? 남아 있는 나는 뭔데?!
30대 초중반 5년 차 정도, 한창 실무 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대. 사람이 없대.
이 말은 사실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늘 그랬거든요. 20대 때 첫 직장으로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도, 그 후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도, 지금도 그런 소리를 듣습니다. 출판계는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와 거의 동급의 전설이자 신화이자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런가 보다’ ‘사실 그렇긴 하지’ 했어요. 그런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던 건 조금씩, 천천히 였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굵직한 사건이 있긴 했습니다.
시작은 2020년 8월(작년 2021년 일인 줄 알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2020년… 21년은 어디 간 걸까요?)이었네요. 도쿄 올림픽에서 4위라는 성과를 이루며 활동한 김연경 선수를 보면서였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당시 국가대표를 은퇴했는데, 저랑 나이가 같더라고요. 김연경 선수를 댈 것도 아닌데, 감히 어디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냐, 어렸을 적부터 저렇게 열심히 해온 사람은 천상계다 하면서도, 놀란 마음이 감춰지지 않더라고요. 아, 이 나이면 저렇게 인생 1막을 마무리하고 2막을 시작할 수 있구나. 그런 나이일 수도 있구나, 그런 거구나…
두 번째 사건은 2021년 9월이라고 합니다.(이것도 21년 하반기네요. 21년 어디 간 거죠?) 그즈음 김태호 피디가 MBC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무모한 도전>부터 봐왔고 지금 보면 불편한 지점이 있다고 하지만 TV를 돌리다 <무한도전>이 나오면 멍하니 또 보는 무도 키즈인 전 조금 놀랐습니다. MBC 파업 때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고, 종편이 생기고, 타 방송사 스타 PD들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케이블 방송사로 이적하는 와중에 지상파의 가치와 힘을 잘 알고 이를 지키며 일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그마저도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을 보며 그 흐름에 몸을 던진다’는데… 나는 뭔데?! 가만히 있는 걸까. 정말 세상이 그냥 변한 게 아니라 엄청 변한 거 아닐까 하고 무서웠습니다.
그즈음인지 그 전후인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튼, 누군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북에디터라는 이유로 팔로우하고 있던 한 분이 스타트업 콘텐츠 회사로 이직하는 거 아니겠어요. 넌더리가 나서, 지쳐서 등등의 이유로 떠나는 사람은 종종 봤지만, 책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간직하신 채 출판계에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애정도 그대로 간직한 채 떠나는 모습에 또 조금 놀랐습니다. 다른 세상이 있는데 정말 내가 멈춰 있는 거 아닐까 하고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조금씩 놀라니까 평범하던 일상에도 놀라는 거 있죠. 늘 해왔던 거다, 익숙하다, 그래도 (베스트셀러든, 불후의 명작이든, 누군가의 인생 책이든) 정점은 찍어봐야지, 이때까지 있었다는 게 곧 잘한다는 거다(?!), 늘 사양 산업이지만 죽지는 않는다(?!)며 자기 합리화하고 있는 거 아닌지. 돌이켜 보니 그리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두 개의 도매상이 망하는 것과 여러 개의 인쇄소가 망하는 것을 보았더라고요. 인쇄 감리를 가면 기장님이 바뀌어 있거나 그때 이야기 나눴던 분 대신 외국인 노동자 분이 들어와 있거나. 제조업을 하시던 아빠가 IMF 때 타격을 받고, 그 후에는 노동임금을 적게 들일 수 있는 외국으로 제조업 공장이 빠져나가는 현실과 그 충격을 온몸으로 겪었던 터라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그만해야 하는 걸까,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때문에 더 지쳐간다는 것을 미처 깨닫기 전에 작가님과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이전에는 ‘책 만든다! 이것 보세요, 여러분!’이는 태도로 달려들었다면 이때는 “책 내는 거 힘든데 왜 내고 싶으실까요?”(책 내고 싶으시다고요? 왜요? 그냥 유튜브 하시는 건 어때요? 지금 쓰신 거 카메라 켜놓고 말해서 올리다 보면 돈 된대요. 출판사 안 끼고 전자책으로 내서 돈 엄청 많이 번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책 내는 거 힘들어요. 작가님도 힘들지만 저도 힘들고요, 들인 노력에 비해 돈을 많이 버는지 그냥 제 월급이 적은지. 무튼 작가님 인세도, 막상 받아보면 얼마 안 돼요. 나무에게도 미안하고. 책 알리려고 활동도 많이 하셔야 하는데. 하실 수 있겠어요?) 물었습니다. 안 하던 질문을 한 셈인데, 생각지 못하게 진지하고 진실한 대답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게 물어야 했던 질문들인데, 스스로에게 묻기도 전에 답변을 날로 먹 얻었어요. ‘우리(작가님, 북에디터, 그리고 독자님까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는 데 책만 한 게 없구나’ 하고요. 그래서 작년 워크숍 때 저의 한 문장은 이거였습니다.
일상에 문제가 있을 땐 인터넷으로, 삶에 의문이 있을 땐 책으로
좋은 책을 만들자, 대충 그런 의미입니다. ‘말하는 대로 된다’는 말을 ‘말했으니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읽는데요, 그렇게 살아질지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안 산다)'고 뭐라 하거나 '책이 곧 부동산 문제구나' 하고 낙담하는 대신 책이라는 세상을 넓히자고 생각했던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쓰기 시작합니다. 아, 그리고 ‘30대 초중반 북에디터들 다 어디 갔을까, 나만 빼고 다 어디 (좋은 데) 갔어!!!!’ (������!!)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기도 했는데요. 요즘 세상 나대야 하는 거 알지만 Z세대처럼은 자연스럽게 나서지는 못하고, 꼰대는 되면 안 되고,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어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임신과 육아로 잠시 멈춰있을 뿐인 그들을 내가 지우려고 했던 건 아닌지 반성하는 마음에 용기를 냈습니다. 우선 시작하라고, 어찌 되든 된다고,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시작만 하라고 용기를 주신 주변 분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써봤자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일종의 자의식 과잉이죠) 시작한다는 기쁨에 취해 수상소감 같은 프롤로그를 올려봅니다. 계속 꾸준히 올라와야 할 텐데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