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이 초반에 가장 중요한 set-up 중 하나는 바로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냐 없냐일 것이다. 밀라노 온 지 3주 차에 소매치기당하며,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만큼 놀랐던 그 상황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액땜했다고 생각했었던 이유는 다음 날 바로 단기 숙소를 떠나 1년 동안 안전하게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장기 숙소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 저 당시 여행지 엽서며 레터링이며 이것저것 사다가 붙이고 혼자 내 공간 인테리어 했다고 무척이나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 지금 사는 집은 이미 집주인이 예쁘게 꾸며놔서 내가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지만..
처음 내가 밀라노에 살던 곳은 밀라노의 동쪽 치따 스투디 지역(아래 지도 속 3번)에 있는 곳으로, 근처에 폴리테크니코 대학이라는 밀라노에 있는 유명 사립대학교 캠퍼스가 있어 동네 분위기며 물가며 그리 험하고 위험한 편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대학가 주변이나 근방에는 밀라노로 상경한 이탈리아 타 지역 출신 학생이나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머무르기 때문에 저렴한 월세방을 구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지금, 2년 전 밀라노 초기 정착기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웠던 것은 룸메들과의 시시콜콜한 추억들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는 것 외에는 집안에만 갇혀 사는 요즘 그때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지금도 물론 좋지만 말이다.
대학생 때도 회사원일 때도 집에서 등하교와 출퇴근을 하며 살았기에 혼자 살이가 처음이던 나에게 룸메들의 존재는 나에게 단순히 룸메 그 이상이었다. 나의 이탈리아 생활 길잡이랄까? 먼저 이탈리아 살이를 먼저 피부로 경험한 친구들이니까 꼰대 마인드를 버리고 정말 그냥 친한 친구, 언니처럼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나이가 많은 게 뭐 대수인가)
이 길잡이 친구들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들 덕분에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생기진 않았다. 반면, 룸메 동생들은 20~24살 때 첫 해외살이를 시작하면서 차별 경험을 심하게 겪는 등 상처 받은 일들이 많아 유학이 끝나는 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들의 실패와 상처 받은 에피소드를 공짜로 겪으면서 시행착오를 덜 겪지 않았다. 물론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 물을 좀 먹었으니 뭔가 요령이 있기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도 한다.
그리고 해외 유학의 장점 중 하나가 한국에서는 못하는 경험을 직접 체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겠지만, 나는 룸메들을 보며, 특히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이탈리아에 온 친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세상을 마주하며 용기 있게 헤쳐나갈 순간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해외살이가 다른 이에게는 지옥일 수 있겠다고..
해외 유학과 이민을 고려하는 분이 계시다면 자신의 평소 멘털 케어와 마인드셋이 어떠하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경제적 자립 못지않게 정신적 자립이 그 무엇보다 가장 큰 핵심이라 생각하기에... 쉽사리 다른 사람을 믿자니 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과 일치하리란 법도 없을뿐더러, 순진하면 속기 쉬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안 그래도 언어도 완벽하지 않아서 말도 안 통하는 환경이니 말이다.
(쉽게 보이고 잘해주면 감사한 마음보다는 호구로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건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똑같은 것 같다)
- 가끔 룸메들과 돈 모아서 분식도 해 먹고 한식도 해 먹고 후식도 해 먹고 즐거웠다.
- 이 사진에는 없지만 나의 가장 큰 길잡이였던 친구가 내가 생일이라고 미역국까지 끓여줬던 건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편하게 머물어야 하는 곳이 사람 문제, 돈 문제, 환경 문제 등등 갖가지로 속을 썩인다면 그 스트레스가 집 문제로 끝나지 않고 나의 일상까지도 어지럽힌다. 저 때 당시 나의 밀라노 생존이 순탄하게 항로를 따라갔었던 이유는 집 컨디션이며 월세며 여러 가지 부분도 나빴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과의 즐거운 추억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현재 정규직으로 일하는 지금, 한 달에 비싼 렌트비를 낼 바엔 아예 대출을 껴서 밀라노에서 내 집을 사는 게 좋겠다는 주변 사람과 나의 의견으로 집을 천천히 알아보자 하지만,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저 모든 걸 다 고려하고 골라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다.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내 직장만 확실하면 집 값에서 최대 80-90%까지를 융자받을 수 있다.)
하..혼자서 헤쳐나가야 한단 생각이 계속해서 차오르니 불과 2년 전 룸메들과 즐거웠던 때가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