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이탈리아 사람들 자체 공략법
이탈리아 사람 전체를 대변하는 내용이 아닌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한동안 유행했던 16가지 성격유형 검사에서 나는 ISFJ ‘용감한 수호자형’으로 나왔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반면 관계술에 뛰어나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갑니다.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지만 이들이 이해받고 존경받는다고 생각되는 한에서는 변화를 잘 수용합니다.
첫 사회생활을 겪으며 여러 사람들과 몇몇 굵직한 사건사고 겪고 나니
어느 정도 한국사회 ver. 서바이벌 patch를 달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지금 이탈리아에 산다.
물론 이탈리아 사람들이라고 한국 사람들과 판이하게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결국 사람 사는 사는 데에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난다고 다 똑같기에…
인간관계를 나름 잘 만들고 관리한다고 주변에서 인정받는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말도 많고 자기 의사표현을 참 잘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지금도 늘 어렵다.
그렇게 1년 차 동안 그들을 마주하고 부딪치며 대략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나만의 가이드라인이 생겼다.
1. 한국에서처럼 격식과 예의를 차리다가는 ‘만만히 대해도 되는 쉬운 동양 여자’로 찍힐 수 있다.
의견을 개진하기보다 경청하는 것이 미덕이고 동시에 엄청난 눈치 전쟁이 일어난 한국 사회에서 커온 나에게 처음에 이탈리아 사람을 상대할 때 솔직히 쉽지가 않았다.
겸손함을 보이는 것이 나를 도리어 높이는 것이라는 동방예의지국 마인드로 그들을 대했다가 오히려 동양인에 대한 판타지만 키워준 적이 사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말 잘 듣고 상냥하고 무조건 네네(일본어로 Hi, Hi) 같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타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문화를 통한 아시아 국가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먼저 듣고 괜찮다고 말한 거였는데, 그들에게는 나는 줏대도 생각도 없는 동양 여자로 보일 수 있다는 걸 겪고 충격을 받았다.
동양 문화를 접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 (한국, 일본, 중국에 여행이나 교환학생 &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배려와 경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8할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말하면 눈치껏 요령껏 알아듣겠지?라는 마음만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대했다가는 얕보이고 호구처럼 취급당할 수 있다.
원하는 게 있다면 확실히 말해야 한다! 그래야 알아준다. 말 안 하면 모른다.
2. 투머치 토커인 그들에게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금방 자신의 속 얘기나 비밀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우정이란 이름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진다. (물론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요)
하지만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 걸린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저마다 제각각이긴 하지만 베네치아 여행 중에 알게 되어 가끔씩 연락하는 이탈리아 친구와의 일화가 인상적이라 살짝 꺼내본다.
그 친구는 이화여대 근처와 연남동에서 2년가량을 모델 활동을 하면서 산 적이 있는 친구로,
나 역시 본가가 마포 출신이라 베네치아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기분에 신나게 떠들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술집에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어쩌다가 이탈리아 워홀로 오게 되었는지 얘기를 나누다가 나의 가족 이야기를 터놓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의 반응이, ‘엇, 왜 내가 묻지도 않은 너의 deep 한 이야기를 왜 나에게 하지?’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친구의 표정을 보고 순간 나는 당황했었다. 내가 뭔가 선을 넘은 것이라는 직감적인 직감을 느끼면서…
...
그러면서 그 친구가 당황하지 말라며, 나 말고 또 다른 한국 친구와도 비슷한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다며 설명을 해줬다.
어느 정도 자신(이탈리아 친구)과 친해졌다고 생각한 또 다른 한국 친구는,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았고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굉장히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격의 없이 사람들에게 잘 다가서고 마치 오랫동안 알던 사이처럼 대하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그들 역시 어느 정도 지켜야 할 선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던 순간이었다.
조금만 친해지면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지는 않는다는 것.. 특히 나이가 젊은 분들이라면 한 번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괜히 나중에 서운함에 친구와의 관계를 끊지 마시기를..
3. 다정하고 살살 녹는 이탈리아 남자들의 언행은 기본 패치 값임을 잊지 말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호감 있는 상대에게 하는 말투와 행동이 여기에서는 기본적인 에티켓으로 대할 확률이 많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개인적으로는 상대방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호감에서 나오는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이탈리아 남자들 모두가 로맨틱하고 정열적일 거란 편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상냥하게 말하는지 원… )
물론 호감을 갖고 친절하게 대한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지나고 보면 내가 도끼병에 걸린 거였나 스스로 자괴감을 들만큼 혼자 오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남자들의 스테레오 타입이 혹시 마초의 남성스러운 이미지라고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더 전형적인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탈리아 남자들은 ‘마마보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중년 남성임에도 독립하지 않고 엄마랑 같이 살며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그런 이태리 남성들을 맘모네(복수형으로는 맘모니)라고 부른다.
전형적인 그들의 이미지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마초적이고 로맨틱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난 후부터 나는 더 이상 이불 킥할 일이 많이 없어졌다.
어떻게 하면 손해보지 않고 이탈리아 사람들과 최대한 동등한 상태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남성들의 호의를 괜히 착각해서 혼자 이불 킥하는 일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웃음이 나오는데 정말 진심이다.)
이렇게 1년 동안 여러 상황을 겪고 나서 나는 나만의 이탈리아 사람 공략법을 적어봤다.
조금 더 이 곳에서 지내면서 분명히 내가 적은 나의 생각이 바뀔 테고 3가지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략법의 개수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기에
일일이 내가 체득한 공략법을 하나씩 외우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상대의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는 습관에서 벗어나
나다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한국에서 눈칫밥 세게 먹으며 살아온 분들이라면 이탈리아어 못해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다고
100% 말씀드릴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의 이야기가 아닐까?)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 눈치를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눈치를 보는 것에 집중을 하고 얘기를 하자면,
한국에서 몸에 밴 그 눈치 보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할 말이 있으면 확실하게 말하자.
주장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하면 오히려 대우 더 해주는 그들이다.
동방 예의 지국 출신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이미 예의는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자신을 표현하기만 하면 이탈리아 사람들, 나아가 외국인을 상대할 때 손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당연히 예의 없는 언행을 보이면 말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험담 장~~ 난 아니다.
Maleducato (예의가 없는, 무식한 등) 그리고 수많은 비속어를 쓰며 욕을 살벌하게 한다.
예의와 무례가 없는 것, 자기주장을 하는 것,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는 건 당연히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아직도 나의 이탈리아 사람 이해하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과연 앞으로 나는 그들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