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보고 우는 스물다섯

신입사원 일기

by 레룬

이십춘기의 최절정에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버겁고 혼란스러워서 자꾸만 주저앉고 싶어진다. 제일 예쁘고 젊은 때라며 신나게 달리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사실 나는 그럴 힘이 없다고 고백하기가 슬프고 죄스러워서 어중간히 산다. 적당히 어른스럽게, 적당히 애처럼 굴다보면 일주일 한달 일년이 어찌어찌 지나가기는 한다.


재작년, 나를 지탱해주던 기둥의 흔들림을 처음 느꼈고 작년에는 지진을 느꼈다. 내 모든 기둥들이 산산조각 났음을 받아들이고 올해부터는 다시 기둥을 차분히 세워가야겠다고 다짐했으나 무언가를 겨우 세워두면 금방 부서지기 일쑤다. 기둥 하나 없이 붕 떠 있는 불안함을 달래고자 여름부터 받기 시작했던 심리상담은 곧 현실적인 우선순위에 밀려났고 다시 손 뻗기가 어려워졌다.


과거의 가치관은 더 이상 나를 지탱해주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관은 예고편도 없이 아직 미완성이다. 그 사이에 선택해야 할 선택지는 늘어나고 책임감은 불어나 의도치 않은 실수와 상처주기를 반복한다. 내 깊은 불안과 공허함으로 남을 할퀼까봐 두려워 자꾸만 혼자만의 동굴로 숨어들어가기 바쁘다. 만남 약속을 먼저 잡지 않기 시작한 건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됐고 그럼에도 한결같이 손을 먼저 건네주는 이들의 아량과 친절을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해진다. 인간관계도, 일도, 건강도 뭐도 잘 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이 느껴져 특히 속상했던 이번주였다.




1. 성장은 수치심을 동반한다

피 말리고 살이 에이는 것 같은 성과압박과 씨름했던 한 주였다. 주별로 트래킹하던 지표를 이번주엔 매일 트래킹하겠다는 엄포가 있었고, 이번주가 내가 시험대 위에 오르는 기간이란 걸 눈치채기에 충분했다. 프로젝트에서 퇴출될지 말지가 결정될 시험대였다. 사실은 지난 두 달 간 너무 어려워서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교체됐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도 몇 번 했었는데,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떻게서든 프로젝트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압박을 받아야하는지 처음엔 어리둥절 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긴 한데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었다. A,B,C라는 목표를 다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걸 우리 다 인지하고 A,B만이라도 챙기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 방심하고 있던 사이 C에 대한 압박이 들어왔고 그제서야 나는 C의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실험기를 허용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떡하지. 안일하게 실험을 즐기고 있었는데 허용된 시간이 끝나버렸다.


이제 내가 해야할 것은 망한 실험기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낱낱이 정밀하게. 내 손으로 나의 판단미스를 분석하고 이해관계자들 앞에서 인정하고 사과하고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 다짐하는 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내 판단미스들을 마주하는 게, 그걸 이제와서 알아차렸다는 게, 그 모든 걸 동료들에게 공개하는 게 죄다 수치스러워 잠이 안 왔다. 더 수치스러운 건 이 부끄러운 일도 몇 번 반복하다보니 벌써 꽤나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이다.


물러나거나 성장하거나. 애매하게 몸을 숨길 무엇도 없이 발가벗겨졌으니 두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은 전부 버리고 얼마나 망가지든 아레나로 뛰어들어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기존에 머물던 내 경계가 여기까지였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게 한 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이제 내 경계를 뛰어넘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 아닐까. 이번 계기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겠다고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위로해본다.



2.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는 적절함이 답이다

안일하게 실험을 즐겼다는 게 편하게 일해왔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게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방향으로만 노력을 기울여왔던 것 같다. 성향상,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미래를 말하는 의견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게 옳고 합리적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지금의 지표를 조금 희생해서라도 그 방향을 향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내 판단을 점검하지도 않았던 것, 합의된 지표에 집착하지 않았던 것, 심지어 오랫동안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게 내 잘못이었다 여긴다.


우연히 내 매니저들이 참여하는 주간미팅록을 보게 됐고 진짜 머리를 세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1000만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보고되는 건 1만큼이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 지표가 이 사람들의 노력을 이렇게 압축적으로 보여줄 정도로 중요한 거였다고? 이런 강도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 지표를 경시해왔다고? 두 달동안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속상했다.


미안함과 속상함을 풀기에는 하등 효과없지만, 여기에서라도 나름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 내가 일해왔던 환경에서 비롯된 생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집착하는 문제가, 지표가, 맥락이 자주 바뀌는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지표상 문제 없게 유지"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아니었다. 업앤다운을 감수하더라도 조금 더 과감한 실험을 해보는 게 장려되었지. 지금까지 내가 어떤 지표를 전담마크하는 하는 포지션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지표를 최소 이 정도 맞춰야한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부족했다. 여기서는 "내 매니징 스콥 내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는 게 능력이다. 새로운 폭탄을 발견했다며 같이 처리하러 가자고 신나게 폭탄 좌표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작은 폭탄들을 내 손으로 처리하며 이 구역은 안전하다는 신뢰를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줘야 한다.


내가 옳았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가 몰입하고 있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으나 때에 따라서는 무식하고 궂은 방법을 쓰는 게 답일 때도 있었고, 결국에 정답이란 없고 때에 따른 적절함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능력은 아직 내게 없다. 그래서 훌륭한 동료들의 판단력을 적극적으로 빌려 써야 한다.



3.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어떻게 했어야 했나를 생각해보면 결국엔 누군가에게 불편한 소리를 정확히 해야했다. 우리 이러면 안 된다, 빨리 해달라, 더 잘 해달라를 내 선에서 더 강력히 말했어야 한다. 괜찮을 거다, 내가 어떻게 잘 처리해보겠다는 겉보기에 예쁜 말로 대강 안심시키는 게 아니라 같이 손에 흙 묻히자고 먼저 나서야 하는 거였다. 불편한 말을 꺼내기 두려워하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려고만 하면 뭣도 안 된다는 걸 배웠다.



4. 진지함과 다정함을 절약해야겠다

난데없이 이번주 중간에 오한과 함께 열이 펄펄 끓었다. 하룻밤 푹 자고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독감도 감기도 아니고 잠시 스트레스성 반응이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몸의 반응으로 바로 드러난 건 처음이라 많이 놀랐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만든 옳음이라는 틀에, 주5일 야근하며 집착하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뭣도 안 되어 스트레스만 누적해왔던 게 아닌지. 그냥 더 힘 빼고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면 오히려 결과가 좋았을 거 같은데 스스로를 괜히 괴롭힌 것 같았다.


회사에서 내가 가진 진지함과 다정함의 8할을 쓰다보니 정작 소중한 사람들에게 쓸 게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힘든 일을 겪고 있는 J양에게 이번달 말고 다음달에게 만나자고 했던 일, 지금 축하할 일이 있는 G양과 맘껏 신남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사실 매일 회사에서 작은 폭탄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간다고 생각하면 그리 진지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데 난 무엇을 위해 자꾸만 큰 폭탄들을 쫓았나. 내가 온전히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회사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고 싶었는데 이런 마음은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지 않은 것 같다.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배우고 훌륭한 동료들과 "능력을 합 맞추는" 경험 속에서 나를 좀 더 잘 알아가는 것, 나는 그거면 회사생활이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엔 진지함이 그닥 필요하진 않다.


내 진지함은 평소에 잘 절약해두었다가 1년 뒤에도 남을 일들에만 신중히 쓸 거다. 1년 뒤에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은 하루 이틀 지나면 뒤바뀔 회사에서의 지표들이 아니라 지금은 J양과 G양에 관한 일이다. 회사생활을 대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을 기울이는 것과 회사생활을 "잘"하는 건 별개라는 걸 인정하는 거다.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으로 충분하다"




이번주 평일의 여운이 다 가시기 전, 하필이면 오늘 아침 주토피아2를 봤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잔뜩 나오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눈물이 난 건 옳은 일을 쫓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성공해내는 이 뻔한 영웅적 서사가 오늘따라 유별나게도 와닿아서다. 지난 6개월 간 옳다고 여긴 걸 쫓았으나 결국 못해낸 나를 대리만족 시켜준 것 같다.


각자의 개성과 다름을 포용하자는 핵심 메세지가 머리로 너무나 이해되어도 잘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에 터져나온 울음이기도 하다. 이십춘기를 겪으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는 마음처럼 남에게 다정하지 못하다는 거였다. 불안과 공허를 품고 있는 와중에는 내가 나를 온전히 예쁘게 봐주지 못해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친절하기 어려운 것 같다. 주디와 닉이 잠시 멀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각자의 트라우마와 연약함을 고백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처럼 나도 얼른 그런 편안함과 용기를 쥐고 싶다.


주디가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는 다른 것 같아"라고 말하듯 내가 원하는 걸 알고, 그걸 이루기 위해 냉정한 결단을 할 줄도 알고, 다시 닉 곁으로 돌아와 "그럼에도 내겐 너가 필요해"라고 말하듯 내 취약함을 포용할 수 있을 때쯤이면 이십춘기는 끝나있을까. 주토피아 보고 글썽이는 스물다섯의 난 아직 내가 못미더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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