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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02. 2023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

추석뒤풀이 겸 1박 2일 제주도민의 관광객놀이

친구가 마라도 여객선에서 일한다. 예전에도 친구 덕분에 마라도여객선을 공짜로 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친구는 부담 없이 오라고 했지만 갈 때마다 커피와 먹을거리를 사고 갔다. 배보다 배꼽이 클 때도 있다. 어쩌겠는가. 핑계로 친구와 통화해서 좋고,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다. 신세를 지면 갚을 일을 생각하며 그렇게 인연의 끈을 이어간다.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 송악산선착장


마라도를 여러 번 갔다 온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한 번도 안 가봤다. 이번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숙소를 모슬포에 잡았다고 한다. 남편은 언제나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날씨 좋고 바람도 적당한 날이었다.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바다다. 사면이 섬으로 둘러싸인 제주는 가는 곳마다 바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서남북 바다의 느낌이 다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한라산이 멀리 버티고 있고 그 앞에 산방산이 힘을 빡 주고 서 있다. 산방산을 왼쪽에 두고 시선을 돌리면 멀리 태평주상절리와 서귀포 범섬이 보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나란히 서 있는 형제섬과 바다를 감싸는 듯한 송악산이 편안함을 준다. 낮에 와도 좋고 밤에 걸어도 좋은 곳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송악산은 사실 아픔이 가득한 장소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제주 지역민을 동원하여 송악산 지하에 대규모 땅굴을 파고 지하진 지를 구축했다. 송악산 알오름 쪽의 땅굴은 군수 물자를 실은 트럭이 드나들 수 있도록 크고 넓게 건설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파 들어간 땅굴이 거미줄처럼 서로 이어진다.




땅굴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실감 나지 않지만 송악산 해안절벽에 있는 인공 동굴은 다르다. 배를 타고 나가서 보면 해안절벽 사이사이 흉물스럽게 뚫려 있다. 일본군이 어뢰정을 숨겨 놓고 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했던 곳이다.




마라도여객선을 타고 가면서 아이들에게 송악산동굴과 일본군에 대해 얘기해 줬다. 아이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알고 보는 것과 그냥 지나치는 것은 다르다. 엄마인 내가 먼저 알고 지속적으로 말을 해 주며 아이들의 뿌리가 단단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 톳짜장면을 시키고 톳을 건져내는 따님들

배를 타고 30분 정도 걸려서  마라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강한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마라도는 국토최남단이라는 것과 예전에 "짜장면 시키신 분"이란 CF로 유명하다.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노홍철이 짜장면을 먹고, 유재석이 다녀간 후 더 유명해졌다.




10시 50 분배를 타고 들어가서 13시 20분 배를 타고 나왔다. 두 시간이면 짜장면을 먹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걸로 충분하다.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 해물짬뽕

톳짜장면과 해물짬뽕집이 정말 많았다. 따로 검색하지 않고 들어간 곳이었는데 맛은? 그냥 그랬다. 짜장면 8,000원. 해물짬뽕 12,000원이었는데 가격대비 맛이 아쉬웠다. 해물도 싱싱하지 않았다. 이왕에 파는 거 좀 맛있게 만들어주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의무감으로 먹은 짜장면이 맛이 없어서 궁시렁 걷다 발견한 예쁜 카페. 아이들과 바다멍 때리기를 했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엄청난 맛을 바라면 그것도 이상하다. 대부분 해녀들이나 그 자녀들이 만드는 음식인데 전문가의 솜씨를 바라면 안 된다. 다만 재료만 싱싱했어도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맛있어서 먹을 때도 있지만 먹는 것에 의미를 둘 때도 있다.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 국토최남단의 마지막카페

바람이 불었지만 제대로 된 가을하늘이 멋진 날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누가 더 푸른지 내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좋은 자연 앞에서 사진을 꼭 찍겠다는 우리 부부.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우리 같은 곳 보는 거 맞죠?

 시선처리도 엉망이고 한 장 건지는 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찍어 놓으니 좋다. 남편이 사진을 보더니 옷도 맞춘 것 같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입은 옷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은근 커플티 같기도 하고. 혹시 이런 게 일심동체인가요?




송악산에서 보는 한라산과 마라도에서 보는 한라산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라도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그들이 머무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다.



짧은 가족여행, 마라도여객선, 혼자 찍어도 꿋꿋하게.


사람을 만나고 보내고 기다리는 삶. 눈을 뜰 수 없는 바람이 부는 곳, 몸 피할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최대한 낮은 지붕을 만든다. 마라도로 들어오는 여객선을 보며 떠나는 자와 남겨진 사람을 생각했다.



- 마라도에서 한 달 살기 하면 장편소설 한 편은

   쓸 거 같아.

- 할 게 없어서?

- 응.

- 안 될걸.

-왜?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넌 바다 보면서 술만 마실 거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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