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었다. 말을 차근차근 잘하세요.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말하세요? 화를 낸 적이 있으신가요?
이 사람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목소리를 깔고 세상 좋은 척하는 사람들은 나와 상관없거나 한 번만 보고 끝낼 사람들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척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 의견이 충동될 때 내 목소리와 말투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하다. 말이 빠르고 목소리가 높다. 대학 다닐 때 언쟁을 벌이던 과선배는 여자만 아니라면 한 대 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동기 남자아이도 너는 정말 얄밉게 말을 한다고 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수긍이 될 때까지 싸웠다. 직장 상사는 내게 모난 돌 같다며 조금 둥글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과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2명 총 8명이 살았다. 할아버지는 말이 없고, 점잖은 분이셨고 할머니는 동네 쌈닭이었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더 이상 자신과 싸울 사람이 없자 시내에 진출하셨다. 버스를 타고 가는 미용실에서 목욕탕에서 싸웠다. 할머니 말로는 자신이 먼저 싸움을 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할머니의 큰아들이자 나의 아빠는 동네에서 유명한 술꾼이자 싸움꾼이었다. 키가 크고 몸이 날쌔며, 다른 삼촌들 말로는 깡다구가 셌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어서 대개 다른 친구들을 구해주기 위해 싸웠다는데 전설의 17대 1도 아빠에게 들었다. 아빠는 그렇게 다른 동네 나쁜 아저씨들과 싸우다 나중에는 농민회회장이 되어 나라와 싸우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뉴스에 보면 데모하는 맨 앞에 아빠가 있었고, 아빠가 경찰과 싸우는 모습도 얼핏 보였다. 아빠는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했고, 그 후로는 또래들과 정치적인 문제로 부딪칠 때마다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장손인 남편의 아내였던 엄마는 내리 딸만 셋을 낳았다. 작고 예뻤던 엄마를 끔찍이 사랑했던 아빠는 딸만 있어도 된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 몰래 병원을 다니며 뱃속의 아이의 성별을 알아냈고, 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수술을 감행했다. 엄마는 말이 없었지만 행동은 빠른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본 올림픽 경기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생겼던 부당한 일과 책에서 읽었던 감명 깊은 장면, 정치이야기까지. 아빠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줬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줬다. 친구들은 우리 아빠를 무서워해서 아빠가 집에 있다고 하면 우리 집에 놀러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빠랑 팔짱을 끼고 걷고,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안으며 인사하고, 지금도 볼에 뽀뽀를 한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 내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말을 차근차근 예쁘게 잘하는 엄마와 부당한 것을 못 견디고 일단 부딪쳐 싸우는 아빠를 반반씩 닮았다. 평소에는 엄마모습이었다가 가끔 아빠가 나온다. 그럴 때 보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생각한다.
내가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도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활달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는 사람에게선 내면의 외로움이나 고통이, 말을 작고 희미하게 하는 사람에게선 내면에 억눌린 분노와 욕망을 찾았다. 외부에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고 생각하고, 저 사람의 실체는 뭘까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느 한순간의 모습, 행동, 말만 가지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알게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야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천천히 가야 하는 이유이며, 독서와 명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 일이다.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는데 큰 길옆에 있는 인도에 깨진 소주병 두 병이 있었다. 내리쳐서 깨졌는지 병 하나는 반이 산산조각 나서 인도에 가득 차 있었고, 하나는 반으로 잘려서 몹시 날카로웠다. 초등학교 옆의 인도였고,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
나는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고 상황을 말했다. 위치를 물어보는데 이미 차에 탔던 나는 정확한 주소를 말하지 못하고, 맞은편에 있는 맛집 이름을 댔다.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줄을 서는 맛집이었고, 직원도 알고 있다고 했다. 빨리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을 한 후 나는 아이들 셋을 픽업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2시간이 지날 동안 해결이 안 돼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내가 주소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서 못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만 놔둔 채 5분을 걸어 병이 있는 인도에 갔고, 직원은 15분 후에 도착했다. 직원은 도착하자마나 상황을 보려 하지 않고 대뜸 왜 화를 내면서 말하냐고 했다. 그때 정말 화가 났다. 바쁜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세 번이나 돌았다고 했다. 나는 내려서 확인해 봤냐고 물었다. 직원은 계속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맛집 맞은편에 있는 인도에 소주병 두 개가 깨져서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인도에 있는 소주병을 차로 돌면서 찾아봤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세 번 돌 시간에 내려서 주변을 살펴볼 생각을 못 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나는 한가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한동안 언성을 높였다. 나도 그도 한 치의 양보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먼저 수고하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를 모르는 그를 앞에 두고 내가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하루에 민원을 10번이나 받는다는 그는 지친 모습이었다. 나는 처음이에요. 말을 하려다 참았다. 그저 빨리 와서 누가 이렇게 버렸을까요? 그러게요. 이 구역 담당자가 지금 없어서 내일부터는 아마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고생이 많으세요. 수고하세요. 이렇게 마무리를 할 수는 없었을까?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잘못을 지적한 사람이 욕을 먹었다. 아무 말도 않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유리 파편들을 피해 걸어야 했을까? 주민센터 직원은 내가 평소에는 아주 우아하고 차근차근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을 모를 것이다. 오늘 재수 없는 아줌마한테 걸렸다며 옆에 앉은 직원에게 하소연을 할지도 모른다.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더니 자기는 예전부터 알았다며 너 완전 기분 나쁘게 말을 한다고 했다. 주먹을 부르는 입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 아, 제가요? 제가 아무 일도 없는데 그렇게 화를 낼까요? 밥 먹으라고 할 때 게임하느라 10분 늦고, 어디 나가려고만 하면 화장실에서 20분을 사는 당신에게 그래도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해야 할까요? 어. 네. 아주 대단하십니다. 우리 서방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어렸을 때 분명 배웠는데 배운 걸 실천하며 사는 게 제일 어렵다. 이 글은 반성문이자 성찰문이자 혼잣말이고 나 좀 위로해줘 하는 하소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