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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사람

엄마도 아플 때가 있어요

by 레마누

언제부터 이랬어요?

네?

오래된 것 같은데

네. 여름 때부터인 거 같기고 하고.

그때 안 오고 뭐 했어요?

네?

어머니, 만일 따님이 가렵다고 하고 피부를 박박 긁어대는데 6개월 동안 병원에 안 데려갈 수 있어요?

아니요. 당장 왔겠죠.

그런데 어머님은 왜 안 오시고 참으셨어요?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멀쩡하다가도 이상하게 의사 선생님 앞에만 앉으면 어딘가 아픈 거 같고, 뭔가 정확하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아파서 갔는데 자꾸 왜 이제야 왔냐고 물어보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목덜미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여름에 라운딩을 갔다 오거나 헬스를 하면 목에만 땀띠가 잔뜩 났다. 목걸이 때문인가 싶어서 여름에는 목에 아무것도 안 걸쳤다. 붉게 올라오던 피부는 금세 가려워졌다. 손톱으로 긁고, 손바닥으로 착착 때려도 간지러웠다. 아이들이 바르다 만 피부과 연고를 발랐다. 흔한 땀띠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왼쪽 귀 뒤가 불편해서 만졌는데 진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라 남편에게 봐 달라고 했더니 힐끗 보고 나서는 병원에 가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아빠보다 조금 나아서 엄마, 엄청 아파 보여요. 얼른 병원에 가세요.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제야 피부과에 갔다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진료를 받은 곳이었다. 아이들은 피부가 예민하고 알레르기가 있다.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피부가 뒤집혔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진료를 자주 받는다. 나는? 항상 보호자로만 다녔다. 의사 선생님이 차트를 보시더니 7년 만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아이들보다 내 피부가 더 예민하다고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피부 때문에 고생했다. 돼지고기를 먹거나 찬물로 샤워하면 온몸에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밭에 갈 때 조금이라도 무장을 소홀히 해서 피부에 긴 풀들이 닿으면 금세 피부가 달아올랐다. 농사꾼의 딸이 풀알레르기가 웬일이냐며 혀를 쯧쯧 찼던 아빠도 온몸이 벌겋게 된 나를 보면 입을 다물었다.


이십 대 때는 두피가 말썽이었다. 한창 멋을 부릴 때라 염색과 탈색, 파마를 하느라 미용실을 부지런히 다녔다. 문제는 내 두피가 그런 화학약품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머리에 딱지가 생기고 진물 이 흘렀다. 아픈 것보다 멋이 중요했던 나는 망설이던 미용실 원장님에게 괜찮으니 염색을 해 달라고 했다. 그때 머리의 반이 빠졌다.


나는 오름이나 올레길도 잘 걷지 못한다. 봄은 재채기를 통해 왔다. 코가 간질간질하면서 커다란 기침이 나면 어김없이 봄이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 우리 집에는 눈이 벌겋고 눈가가 간지러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기침을 해댄다. 먹을 건 떨어져도 갑 티슈는 손 닿는 곳마다 배치해야 한다.


선생님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담배를 피운다고 모든 사람이 폐암에 걸리는 게 아니듯 알레르기에 강한 사람이 있고, 유난히 약한 사람이 있다며 나를 쳐다봤다. 너무 따뜻하거나 너무 추운 곳을 피하고, 습하거나 건조한 것도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곱게 살라고 하셨다. 자기 몸을 아끼면서 살라고. 조금만 이상하면 병원에 와서 약을 먹으라고. 제발 참지 말라고.


선생님. 저도 예전에는 저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조금만 아프면 쪼르르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예쁜 것만 보고 입었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저와 아이들이 동시에 아프면 저는 뒤로 물러서게 돼요. 아이들이 남긴 걸 먹느라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잊었어요.


책을 읽을 때는 나를 먼저 생각하자.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말에 줄을 긋고 필사도 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세 아이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엄마를 부르면 저는 약을 바를 시간도 없어서 그저 손으로 박박 긁으며 아이들에게 가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약을 열심히 먹으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부지런히 집으로 가서 약을 먼저 먹었다. 지금도 여전히 간지럽지만, 적어도 마음은 아프지 않다.


오늘의 다짐.

아프면 병원에 가자.

아이들이 남긴 밥 먹지 말자.

가끔 화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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