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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an 25. 2024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

글쓰기의 기본에 관한 책

안톤 체호프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공연되는 희곡을 쓴 극작가이자, 모파상과 더불어 현대 단편 문학의 형식을 확립한 러시아 작가이다.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를 마지막으로 장식했다.



가난한 농노 출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료품가게가 파산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어 중학교를 마친 안톤 체호프는 모스크바의과대학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명으로 단편을 기고했다. 이때 쓴 소설에는 풍자와 유머나 뛰어났다. 의대졸업시험 준비와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폐결핵에 걸렸고, 평생 결핵에 시달렸다. 1884년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체호프는 도스토옙스키를 발굴해 낸 원로작가에게서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담긴 따뜻한 편지에 감동을 받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1888년 최고의 시인에게 주어지는 '푸시킨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과 비판을 동시에 받게 된다.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

1890년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던 체호프는 러시아의 교도소 제도를 조사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마차와 배를 타는 힘든 과정을 거친 끝에 사할린 섬에 도착. 사할린섬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죄수의 일상을 조사한다. 그해 12월에 모스크바에 들어와 현장 보고서 <사할린 섬>을 쓴다. 사할린 섬 방문 후 안톤 체호프는 기존의 해학적인 작품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 현실 비판적인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체호프는 왜 사할린에 갔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1Q84 1>에 나온 문장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체호프 스스로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을 거야. 어쩌면 그저 단순히 그곳에 가보고 싶었던 거 아닐까?..... 중략.... 지도를 들여다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 싶은 장소가 있으니까. 그곳에는 어떤 풍경이 있는지,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튼 그런 게 못 견디게 알고 싶어져. 그건 홍역 같은 거야... 중략... 체호프는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의사였어. 그래서 그는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러시아라는 거대한 국가의 환부 같은 곳을 자신의 눈으로 검증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자신이 도시에서 안온하게 살아가는 인기 작가라는 사실에 체호프는 뭔가 불편한 감정을 품고 있었어. 모스크바의 문단 분위기가 지겹기도 했고, 걸핏하면 서로 물고 뜯는 문학 동료들과도 어울릴 수가 없었지... 중략.. 그리고 사할린 섬은 많은 의미에서 그를 압도했어. 그렇기 때문에 체호프는 사할린 여생을 소재로 삼은 문학 작품은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던 게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 Q84 1부 중 P.547~P.548)



<안톤 체호프의 글쓰기 :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은  러시아 사할린에서 작가, 문화기술자, 여행자, 조사원 등으로 활약하면서 쓴 체호프의 <사할린 섬>과 그의 사적인 편지, 여행일기 등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명확한 조언을 브루넬로 교수가 추려낸 책이다. 안톤 체호프의 감정을 배제한 리얼리즘 스타일의 글쓰기 비법이 들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상은 어떤지도 모른 채 교도소와 유형에 대해 논쟁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할린 섬에 관한 공식 보고서를 비롯한 어떠한 연구도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문학인은 도시에 살면서 농민을 이야기했다. P.34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교도소에 방치했고, 기준도 없이 야만적으로 그들을 헛되이 죽어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운 채 수천 베르스타(러시아의 예 거리 단위-1 베르스타는 약 1,067킬로미터)를 통과하게 했고, 매독에 걸리게 했고, 부패하게 만들었으며, 미친 사람을 배가시켰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책임을 지나친 음주로 딸기코가 된 교도관에만 지우고 있습니다. P.35
체호프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염려를 뒤로 하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긴 여행길을 선택한 체호프 역시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여행은 길고 고단했으며, 건강이 약했던 체호프는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호프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여행은 매력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배울 것입니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40대의 채찍형을 받아야만 알만 한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무지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무지가 만연하는 사회.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넘쳐나는 죄수들은 그저 시베리아 유형지에 보내질 뿐이다. 법학도들은 대학에서 사람을 교도소나 유배형에 처하는 법만 배우고, 일자리를 얻으면 재판하고 판결만 한다. 소송 이후 죄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 교도소가 어떤지 시베리아의 상황이 어떤지 관심이 없다. 사회를 바꾸려는 지식과 용기가 부족한 그들은 방해되는 인물들을 그저 유형지에 보낼 뿐이었다.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 중 안톤 체호프



<안톤 체호프의 글쓰기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은 리얼리즘 대가인 안톤 체호프만의 감정을 배제한 리얼리즘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 그가 사할린 섬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어떻게 썼는지 글쓰기의 기본을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리얼리즘의 대가 안톤 체호프의 리얼리즘 글쓰기의 기본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여행하라

*가까운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목표를 명확히 하라

*아무도 공부하지 않은 것을 공부하라

*신발값을 아끼지 마라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을까 걱정하지 마라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마라

*헛소문과 낙서에 호기심을 가져라

*식사 초대를 수락하라

*공동묘지에 가서 비문을 읽어보라

*혼자 산책하라

* 밤낮으로 관찰하라

*오감을 사용하라

* 비평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양심에 따르라

*여행이야기를 쓸 때는 추억에 몸을 맡겨라

*낯선 장소를 이야기할 때는 독자들이 아는 장소와

비교하라

         

그중 내가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미루지 말기 : 기억이 생생할 때 기록하라.

왜 글을 쓸 수 없는지 이해하기 : 교훈을 주려고도, 진실을 숨기려도도 하지 말라.


글을 쓸 때 막힐 때가 있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먼저 생각할 때 종종 그렇다.

체호프 역시 사할린에서의 일을 글로 쓸 때 방향성을 잃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교훈을 주려고 하거나 뭔가를 숨기려고 할 때이다. 사할린에 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돼지처럼 탐욕스러운 부류가 얼마나 많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글이 쉬워졌다는 그의 말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글쓰기의 기본을 말하고 있다. 화려한 문장이나 잘 팔리는 글을 위한 일회성 기술이 아니라 진짜 나만의 글쓰기를 위한 체호프의 진심 어린 조언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지금도 깊은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는데, 소장하고 싶어서 책을 읽자마자 주문했다. 주문하는 김에 체호프의 단편소설과 희곡모음집도 함께 주문했다. 23년 11월은 그렇게 체호프에 빠져 살았다. 체호프를 만나고 나서 내 글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문장이 단순해지고, 설명이 줄었다는 것이다. 기록과 관찰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를 글로 표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글쓰기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한 작가 지망생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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