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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an 30. 2024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스타일

한적한 오후였다. 아들과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들이 느닷없이 팔을 휘두르며 수영하는 흉내를 냈다. 겨울방학 동안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그게 재미있는 모양인지 요즘 걸을 때나 가만히 있을 때도 계속 팔을 움직인다. 하는 모양이 우스워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주말 아침에 늦잠도 못 자고 항상 수영장에 데려다주는 남편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누워서 수영하는 흉내를 내는 아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여서 얼른 왼쪽 뺨을 보여줬다.

-오빠. 나. 이거.

-뭐?

-오늘 뺐지요.

-아프다고 하면서. 뭐가 그리 급하다고..

아들은 쳐다볼 때는 그렇게 다정한 눈빛이더니 나만 보면 싸늘하게 변하는 게 아무래도 보통사람은 아니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빠져서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어제 나는 심하게 아팠다. 뭘 잘못 먹었는지 낮부터 설사와 구토를 반복했다. 저녁 즈음에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누워만 있었다. 점심은 아이들 까리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었고, 저녁은 남편이 와서 치킨을 먹었다. 나는 물만 마셔도 설사를 하는 통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잠을 자다 얼굴이 뜨거워 체온계로 재 봤더니 38.5도였다. 타이레놀을 먹었다. 온몸이 뽀사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냉장고에 놔뒀던 삶은 고구마가 범인 같았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다른 건 똑같이 먹었는데, 나만 고구마를 먹었다.아무튼 그렇게 위로 아래로 다 나오고 나니 힘이 쭉 빠지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원래 월요일에 큰아이 약을 타러 병원에 가야 했는데 못 갔다. 하루만 늦어도 안 될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고, 밥도 된장국에 말아서 반공기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피부과에 가서 큰 아이의 약을 타는 김에 의사 선생님이 전부터 말씀하셨던 왼쪽 뺨에 있는 지방종을 레이저로 제거했다.



피부가 선생님은 요즘 이런 걸 달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전부터 빨리 빼라고 했다. 나는 원래 피부과 화장에 별로 관심이 없다. 눈이 나빠서 거울 앞에 서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얼굴에 관대한 편이다. 그런 말을 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왼쪽 뺨 한가운데 심술궂게 자리한 커다란 게 눈에 들어왔다. 이왕에 뺄 거면 겨울에 하는 게 좋을 거고, 큰아이 약은 3주 있다 타러 갈거라 오늘 뺀 건데 남편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아프다고 하면서 점 뺄 생각은 어떻게 했느냐며 화를 냈다. 나는 남편이 왜 화를 내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인상을 찌푸려도 끄덕하지 않았다. 물론 예전 같으면 섭섭하고 속상해서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래, 화를 내고 싶으면 내라. 화 내면 당신 얼굴에 주름 생기지. 혈압 오르지. 난 손해 볼 거 하나 없다. 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남편도 그걸 알고 있다. 슬슬 눈치 보다 장난 한번 걸면 금세 풀린다.


남편이 퇴근하자마다 근사한 저녁상을 대령했다. 배부르게 잘 먹은 남편은 커피를 외쳤다. 원두커피를 맛있게 내려서 가져다 줬다. 그걸로 끝이다.


속에 오래 담아두지 않기. 서로를 안쓰럽게 바라보기. 이해보다는 인정하기. 우리 부부가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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