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Jan 26. 2024

벌써?

친구의 딸이 결혼한다고?

친구의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가 없는 단체톡을 확인하고, 바로 친구에게 톡을 날렸다.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느냐, 섭섭하다. 는 말을 했다. 바로 답장이 왔다. 미안해서. 나는 그 글자를 한참 쳐다봤다. 


친구는 중학교 때 나와 절친이었다. 다른 친구와 함께 우리는 삼총사라고 하며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가 달랐지만 여전히 학교밖에서 만남을 유지했다. 수능을 같은 학교에서 봤고, 대학생이 돼서도 꾸준히 만났다. 다른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 틈에 살았지만, 제일 친한 친구하면 그 아이의 이름을 댔다.


친구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일찍 결혼했다. 나는 부신부 역할을 하며 친구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그 후 친구는 임신과 출산을 했고, 내가 사는 곳에서 점점 멀어졌다. 산후조리원에 갈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케이크를 사고 갔던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해서 직장생활에 적응 중인 사회초년생이었다. 친구가 아이에게 젖 물리는 게 마냥 신기했다. 친구의 집들이에 갔을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렸다. 친구와 나는 만나자는 말을 반복했지만 정작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사이가 됐다.


친구의 미안해서.라는 말에 그 모든 시간들이 지나갔다. 내가 처음 야한 영화를 본 건 그 친구의 집 안방에서 본 <연인>이었고, 수능이 끝나자 친구가 오빠에게 부탁해서 처음 나이트를 갔다. 친구의 도전을 응원했고, 깔깔거리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서툴고 부족했던 그 시절을 함께 보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걸 지켜봤다.


이번 주 토요일에 친구딸 결혼식에 갔다 와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던졌다. 토요일은 세 남매의 수영과 수학학원, 바이올린연습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 나는 알아서 할 게 아니라 당신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할 거라는 미운 소리를 했다. 그럼, 친한 친구딸이 결혼을 한다는데 안 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남편은 만나는 걸 본 적도 없다면서 친한 거 맞냐고 물었다. 나는 만나고 싶어도 너무 멀리 살아서 당신 눈치 보느라 못 만난 거 아니냐고 또 소리쳤다. 


언제든 만날 수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밖에 나가는 게 자유로워졌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또래에 비해 늦게 아이를 낳은 나는 친구들과 생활패턴이 다르다. 뭐든 해봐야 하는 건데 이십 년 동안 집에만 사는 것이 익숙해져서 한번 나가려고 하면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사람 좋아하고 기를 쓰고 돌아다녔던 ENFP가 집순이가 돼버렸다.


이번주 토요일에 나는 잘 차려입고 혼자 한 시간 정도 운전해서 친구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그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온 후 이른 점심을 먹여야 한다. 그리고 11시 30분에 출발해서 3시쯤에 돌아오면 될 것 같다. 한복을 입고, 신부어머니 역할을 하는 친구와 만나 환하게 웃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야지.

너는 딸을 시집보내는데 나는 10살 난 막둥이 언제 키울 거니. 하며 농담도 주고받겠지. 그렇게 우리는 달라진 상황에서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미안하다. 는 말을 숨기고, 보고 싶었다는 말은 감추면서 고생했다는 말과 잘했다는 말을 늘어놓으며.. 


빨리 토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사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