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Jan 19. 2024

제사의 의미

어제 증조할아버지의 제사였다. 2004년에 결혼하고 시어머니는 아들 셋을 불러 앉혀서 말씀하셨다. 내가 몸이 안 좋으니 너희들이 제사를 가져가라. 제사를 준비하고 차리는 건 며느리들이었지만 어머님은 아들들에게 얘기했고, 그 아들들이 각자의 집에 통보했다. 그렇게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제사를 준비하게 됐다.


큰 형님이 설을 포함한 제사 3번, 작은 형님은 추석을 포함해서 3번, 나는 할머니제사와 증조할아버지제사가 배정됐다. 기준은 모르겠다. 어머님은 본인이 대소사를 맡아 치르면서도 며느리들이 나서는 걸 싫어하셨다. 아버님한테는 큰소리를 치시면서도 정작 며느리들은 남편에게 눈 한번 기는 걸 참지 못했다. 덕분에 며느리 셋은 공동운명체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이지만, 현실적인 분이셨다. 제사 때 필요한 병풍과 상, 그릇까지 모두 물려주셨다. 우리는 바닥에 까는 초석하나까지도 어머님께 물려받았다. 숟가락, 그릇도 모두 어머님은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서울대병원에서 몇 년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던 어머님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정정하시다.


친정 엄마는 아무것도 없는 집에 시집와서 큰며느리노릇만 30년을 넘게 했다. 명절과 제사는 일 년에 12번이 넘었고, 초하루마다 문전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냈다. 할머니는  늘 아들을 못 낳는 엄마를 못마땅해했다. 엄마는 밭에 갔다 오고 나서 제사를 준비하느라 빵과 과일을 상에 올릴 때가 많았다.


철없던 나는 제사준비하는 엄마를 도와준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일부러 늦게 집에 가서 차려진 밥을 먹었다. 설거지하고 정리하면서도 구시렁대기만 했다. 제사는 엄마가 할 일이었고, 이렇게라도 도와주는 것이 어디냐고 온갖 생색을 냈다.


결혼하고 나서 몇 년 동안은 제삿날이 다가오면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청소를 하고, 양념장을 체크하고 부엌을 뒤집어 놓았다. 일 년에 두 번 우리 집에 오는 시댁 고모님들과 (남편의 고모님은 6 자매다) 사촌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다 모이면 40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의 저녁밥을 준비했다. 돌아갈 때 손에 하나씩 봉투를 건넸다. 빵과 떡,과일등을 넣었다. 생각할 게 많았고, 아무리 준비를 잘한다고 해도  항상 뭔가가 부족했다.


3년 동안 코로나가 성행하면서 친척들이 돌아다니며 제사 먹는 일이 없어졌다. 덕분에 준비하는 게 수월 해졌다 코로나의 긍정적인 영향이다. 하지만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고 제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건재하시고 앞집에 살고 계시면, 이제는 언니 같은 큰 형님도 아침 일찍부터 와서 전을 지졌다.



얼추 준비를 끝내고 형님은 저녁에 다시 오겠다며 집으로 갔다. 남편하고 둘이서 제사상을 차리고 있었다.



-엄마, 그런데 오늘은 누구 제사야? 옆에서 심부름을 하던 아들이 물었다.

-  아빠의 증조할아버지.

-그럼 내 고조할아버지네.

-그렇지.

-그럼 몇 년도에 살았던 분이야?

-음.. 그러니까. 아빠의 아빠가 35년생이니까. 아빠의 할아버지는 한 1910년 정도겠지. 그러면 그분의 아빠니까 1880년?

-  와? 진짜? 그럼 19세기 살았던 할아버지 제사를 21세기에 하는 거네. 대박.

-그게 그렇게 되네.


-그럼 나도 나중에 고조할아버지제사를 지내야 돼?

-어. 그건 아닐걸.

-그럼 제사 안 지내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게. 이제부터는 제사 안 지냅니다. 하고 잘 말하고 끝내야지.

-그럼 섭섭해하지 않을까?

-많이 드셨으니까 괜찮을 거야. 계속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네.


그런데 제사를 지내는 기준은 뭘까? 20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제사를 차렸는데 아들의 질문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했다. 증조할아버지가 살았을 1800년대를.


일 년에 몇 번 있는 문중 행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다.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듣고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안 계셨던 할아버지의 성함을 알려주고 그분이 어떠셨는지 말해준다. 아빠의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고, 아빠는 어디서 태어나 자랐으며, 너는 누구의 딸이고 아들인지를 말해주다 보면 하나의 큰 틀 안에 담겨 있는 기분이 든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척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와 갈라진 가지다. 혼자 사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 가끔은  바람 불어 가지가 흔들리고 색 바랜 낙엽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중요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제사를 차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면 행동은 무거워지고, 생각은 깊어진다. 험하고 힘든 세상 속에서 단 한 사람만 나와 이어져도 살 수 있다. 아무리 엇나가려 발버둥을 쳐도 나를 잡아줄 사람 딱 한 사람이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런데 엄마, 제사는 꼭 해야 하는 거지?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단지 지금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아들의 질문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우물쭈물거리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칠 때가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야 할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주인은 누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