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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an 17. 2024

마음의 주인은 누구?

금니를 팔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른쪽 아래어금니가 욱신거렸다.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치과치료를 받고 있는데 나는 일 년에 한 번 스케일링만 하고 있다.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겁이 나서 치과를 못 갔다.


이십 년 전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남편과 해안도로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해삼을 먹다 어금니가 깨졌다. 이십 대 초반에 어금니 하나를 충치가 심해서 뺐는데 치료를 하려니 목돈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치과에 한번 다니기 시작하면 돈이 많이 들었다. 당장 방세걱정하느라 전전긍긍이었던 나는 이 하나가 없는 상태로 이십 대를 보냈다.


그런데 결혼하고 반대쪽 어금니가 깨진 것이다. 남편은 이번에 치료를 제대로 받으라고 했다. 아는 치과의사를 수소문해서 같이 가줬다. 임시방편으로만 살았던 내 치아는 엉망이었고, 의사는 브리지 6개를 권했다. 남편이 알았다며 카드를 건넸다. 아랫니는 금니로 하고, 윗니는 사기로 해서 위아래 치아 6개를 만들었다.


2년 전 아랫니가 아파서 치과에 갔는데 브리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격도 많이 올라서 6개를 한꺼번에 하려니 돈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남편과 의논해서 일단 급한 아랫니 3개 먼저 브리지를 바꾸기로 했다. 이럴 때는 남편의 카드만 쳐다봐야 하는 전업주부의 신세가 처량하다. 이 나이 되면 남들은 딴 주머니도 있고, 비상금도 모은다는데 난 뭔가 싶어 기가 죽었다. 알뜰살뜰 살림을 잘하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치과에서 오래된 금니를 건네줬다. 금은방에 가서 팔라고 했다. 나는 기대에 차서 얼마쯤 받을까요? 물었다. 간호사는 얼마 안 할 거예요. 한 만 원?이라고 했다. 그게 어디냐 싶어 비닐에 잘 싸서 지갑 깊숙이 넣었다.


오늘 치과에 들렸다 시장에 가는 길에 금니가 생각났다. 시장 근처에 있는 금은방문을 열었는데 마침 인상 좋아 보이는 언니가 앉아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혹시 금이빨 사나요? 물었다. 언니가 일어서며 그럼요.라고 대답했고, 나는 주섬주섬 지갑에서 금니를 꺼내 언니에게 건넸다.


언니는 저울에 금니를 달았다. 저울눈금이 언니 쪽이라 나는 중량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게 뭐라고 은근히 떨렸다. 언니는 십만 원입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못 들은 척 네?라고 했다. 금니값 십만 원이요. 드려요? 하며 오만 원짜리 두 장을 테이블 위에서 건네줬다. 생각지 못한 금액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빨개진 얼굴로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를 구십 도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처음에는 십만 원이라는 공돈이 생겨서 좋았다. 그러다 갑자기 다른 곳에 가면 더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량이 얼마냐고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냐? 요즘 금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혹시 순금이라면 횡재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한테 사기 친 거 같은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좋았던 기분은 사라지고, 여러 군데 비교하지 않고 처음 들어간 곳에서 덜컹 금니를 팔아버린 내가 너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이러니까 돈을 못 모으는 거야. 알뜰살뜰하기는 개뿔. 여기저기 비교해 보고 더 달라고 떼도 쓰고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받아낼 생각을 해야지. 십만 원이라는 말에 그냥 좋아서 헤헤거렸으니 나 같은 호구도 없을 거야.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나는 기분이 나빴다. 사람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내 마음의 주인은 누구일까? 간호사가 만원정도 할 거예요.라는 말을 할 때는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십만 원 주고 팔고 나자 갑자기 금니가 어마어마하게 소중하고 비싸게 느껴졌다. 저울을 안 보여준 것도, 딱 잘라 십만 원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 나를 속이려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자책이 시작됐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이만 원만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십만 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에 있는 다른 금은방에서는 십오만 원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쳐들어와 마음을 어지럽혔다. 생각도 마음도 내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왜 나는 제 마음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이미 끝난 일을 붙잡고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쁜 일은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그 생각하나 못 버려서 꿈자리가 사나운 적이 많다. 그깟 일 때문에 소중한 내 시간을 버릴 수 없다고 말은 하지만 어리석은 일을 기어 코하고 나서 또 후회를 한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삶이다. 나이가 들면 조금 나이 지려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풀이 죽어 집에 왔는데 브런치에서 에세이 부문 크리에이터에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또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얼른 캡처해서 인스타에 올렸다. 남편이 축하한다며 저녁에 치킨을 사 준다는 말에 금니 팔아서 십만 원 받았다는 말을 꾹 눌렀다. 말하면 나한테 쏘라고 할 것 같았다. 나는 오늘 공돈이 생겼고, 브런치에서 당근을 받았으며, 저녁으로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하루다. 마무리는 언제나 훈훈하게. 오늘은 쫓기는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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