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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09. 2024

꼬마 김밥으로 위장한 당근 먹이기

엄마는 다 계획이 있단다

요즘 내가 즐겨 먹는 식재료는 당근이다. 이맘때쯤 구좌읍을 지나다 보면 밭에서 당근과 월동무를 수확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민이지만 서쪽에서 나고 자란 나는 당근수확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계속 쳐다본 기억이 있다. 


 언제부턴가 당근이 좋아졌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이름도 생소한 '당근라페 다이어트'를 자꾸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생당근이다. 


대학생 때 주점에 가서 소주를 시키면 당근이랑 오이가 밑반찬으로 나왔다. 나는 메인 안주보다 당근을 더 많이 먹었다. 


마트에서 흙당근을 샀다. 세척용보다 흙당근이 싱싱해 보여서 항상 흙당근을 산다. 잘 고른 당근 7개를 비닐에 담는다. 과자 세 개 값도 안 한다. 가격이 너무 싸서 속상했다.


당근을 씻어서 먹기 좋게 자르고 반찬통에 넣는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먹는다. 요즘은 양배추와 사과, 당근을 채 썰어서 그릭 요구르트를 붓고 저녁 대신 먹고 있다. 방학이라 아이들과 삼시 세 끼를 먹다 보니 살이 쪘다. 어쩔 수 없다. 먹을 거 다 먹으면서 날씬하길 바라면 욕심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당근을  안 먹는다는 것이다. 안 먹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한다. 특히 막둥이가 질색팔색이다. 파프리카와 오이는 잘 먹는데 왜 당근을 안 먹는지 모르겠다. 카레에 넣은 당근도 빼먹을 정도다.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엄마다. 엄마는 항상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조금씩 의도한 방향으로 아이들을 끌어간다. 막둥이는 김밥을 좋아한다. 김밥 종류 중에 꼬마김밥이 있다. 꼬마김밥에는 단무지와 당근만 있으면 된다. 


아침에 밥을 하고, 당근을 채 썰어 올리브유에 볶았다. 단무지도 얇게 채 썰고 준비했다. 밥통에서 금방 한 밥을 덜어 양푼이에 넣는다.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소금과 깨를 솔솔 뿌렸다. 부엌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막둥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온다.

"엄마, 오늘 아침은 뭐예요?"

"응, 오늘은 김밥."

"와, 나 김밥 좋아하는데."

막둥이가 양념된 밥을 저어보겠다며 팔을 걷어붙인다. 양푼이를 무심하게 내민다. 밥을 저으며 한 번씩 맛을 본다. 

"그런데 왜 햄이랑 계란이 없어요?"

"오늘은 꼬마김밥을 만들 거야."

"와, 나 햄 들어간 김밥 싫어하는데. 잘 됐다."

막둥이는 햄이 안 들어갔다는 것만 신경 쓰느라 당근이 산더미 같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 저도 만들어도 돼요?"

"당근입니다."

이제 다 넘어왔다. 손끝이 야무지고 의욕이 넘치는 막둥이가 비닐장갑을 끼더니 밥을 담고 김밥 끝에 밥풀을 붙여가며 김밥을 말았다. 


김밥은 언제 제일 맛있을까? 나는 김밥을 썰며 먹는 꼬다리가 제일 맛있다. 우리 막둥이도 그걸 알고 있나 부다. 김밥을 싸다 말고 갑자기 먹기 시작한다. 당근이 듬뿍 들어간 꼬마김밥을 맛있다며 먹고 있다. 집김밥은 한번 먹으면 멈출 수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다. 막둥이도 그런가 보다. 계속 먹는다. 나는 만들면서 그런 막둥이를 보며 키득거렸다. 당근만 보면 온갖 인상을 쓰던 사람 맞니? 


막둥이는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게 꼬마김밥을 먹었다. 맛있다는 말과 다음에도 또 만들자는 말을 남겼다. 최고의 후기다.


다음에는 당근으로 뭘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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