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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an 14. 2024

여행자의 눈

비행기 타고 가요

지난주 월요일에 청주에 사는 작가님의 전화를 받았다. 저녁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온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갈비가 먹고 싶다고 해서 서둘러 내려오는데 시간이 되면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시간을 물으니 9시 도착이라고 했다. 작가님은 좋아하는 갈빗집이 있는데 꼭 거기서 보자고 하셨다. 9시면 한밤중인 우리 집 사정상 나는 나갈 수 없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동문시장 앞에서 작가님과 작가님 식구들을 만났다. 나는 주로 오후 늦게 시장 보러 동문시장에 간다. 우리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동문시장에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온다.



 저녁이면 사람들로 발 디디도 틈이 없는 동문시장이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작가님과 시장을 돌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온라인으로만 만나다 오프라인에서 만났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글이라는 공통된 화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작가님 남편분이 노점상에 있는 야채들을 눈여겨보다 나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싱싱한 야채를 매일 사러 오시다니 부럽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제주에서 불러 먹고 있어요."

노점상 할머니들이 펼쳐 놓은 걸 보니 양배추와 브로콜리, 고수와 봄동, 쪽파와 시금치등이 있었다.

"저 여기서 시장 안 봐요. 마트가요."

"녜? 왜요?"



글쎄.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야채값이 비싸다고 투덜거리면서 시장을 보곤 한다. 가끔 운동삼아 내려와 동문시장을 돌아보긴 하지만 규칙적으로 시장을 보는 편은 아니다. 예전에는 할머니들이 파는 걸 인정상 사기도 했다. 그런데 사고 오면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마트를 갔던 것 같다. 그런데 작가님의 시선으로 보니 또 야채들이 너무 싱싱해 보였다.

 

작가님이 극찬을 했던 갈빗집이다. 아이들과 저녁 먹으러 갔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가끔 제주도민이지만 육지사람들에게 맛집을 추천받을 때가 있다.


제주산 양념갈비 260g 1인분에 16,000원이었다. 작가님께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웃으시며 냉면도 맛있으니 꼭 같이 먹으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잘 먹었고, 우리 부부는 그럭저럭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걸 먹으러 일부러 비행기를 탄다고? 하다가 문득


우리에겐 흔하고 쉬운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살면서 동네에서 추렴한 돼지고기를 먹었던 나는 맛있는 돼지고기에 민감하다. 수입산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고기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냉삼겹도 잘 먹지 않는다. 집 앞 정육점에서 산 제주산 돼지고기로 구워도 맛있다. 그렇게 먹다 보니 어딜 가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생각보다 별로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진짜 맛있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항상 즐거운 건 호기심 때문이다. 반대로 늙어서 서러운 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머물지 말고 떠나라는 말을 한다.


김밥장사를 하는 동생의 꿈은 유럽에서 김밥집을 하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70대의 고모가 말했다. "나도 예전에는 어딜 가서 뭘 해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 집 밖에 나가는 게 싫고 무서워. 젊었을 때 실컷 돌아다녀라. 좋을 때다."



언제나 당당하고 멋진 고모였는데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할머니처럼 보여서 나는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도 요즘은 어딜 가기가 싫다. 아이들은 놀러 가자고 난리인데 솔직히 겨울방학 내내 집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를 가서 또 뭔가를 해야 할 생각을 하면 겁부터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서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당연히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은 두려워도 자꾸 부딪쳐야 한다. 머리는 그렇게 말하는데 늙고 고집 센 몸뚱이가 꼼짝을 안 하고 있다.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편님, 우리 비행기 타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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