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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08. 2024

만일 내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면

비가 오는 수요일 오후 2시 한적한 동네 길모퉁이 카페 앞에 마흔 중반의 여자가 서 있다. 통이 큰 초록색 리넨바지와 굽 낮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베이지색 캔버스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멘 여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뒤로 젖히며 붉은 벽돌건물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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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가 여자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여자의 앞머리가 구불구불 이마에 달라붙었다. 여자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보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하던 여자가 열린 카페문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여자가 안경 속에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가게 안에 들어가자마자 카운터가 있었다. 카운터 오른쪽에는 바형식의 기다란 탁자가 있었는데, 높고 동그란 바텐더 의자 세 개가 나란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제일 안쪽에 있는 의자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손님이 들고나갈 때마다 말을 멈추고 인사했다. 


여자는 혼자 카페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거나 혹은 집에서 아무거나 주워 먹고, 아이들이 끝날 시간에 맞춰 학교에 픽업을 갈 생각이었다. 여자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친구는 몰랐기 때문에 선약이 있다고 말했고, 이미 집에서 나와 있던 여자는 조금 당황했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비었는데, 다시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여자는 다른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혼자 책 읽기 좋은 카페 좀 알려줘. 이왕이면 점심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친구는 오랜만에 인사 없이 용건만 말하는 여자에게 세 군데 카페 링크를 보냈다. 여자가 무심히 하지만 꼼꼼히 카페를 검색하며 살폈다.


여자는 사람들이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호한다. 사람들이 많아서 아무도 옆자리에 신경 쓰지 않는 곳에 혼자 앉아 있으면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변할 여유가 없었다.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뭐라도 하는 척하다 보면 정말이지 뭔가가 되는 것도 같았다.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세련되고, 적당히 세속적인 맛이 있는 곳에서 여자는 시간을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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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오늘 전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늘 가던 곳이 아니라 낯선 곳에 발을 내디뎠다. 작은 가게 안에선 한 사람의 움직임도 크게 다가왔다. 여자는 사장이 누군가와 나누는 이야기를,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책을 넘기는 소리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온 듯한 몇 명이 나누는 직장이야기와 사랑하는 것이 분명한 남녀의 밀담을 배경음악으로 하며 책을 읽었다. 카페 안을 가득 채운 샹송이 전체적인 그림이라면 이런저런 소란스러움은 아기자기한 네 컷만화 같았다.


여자는 한 시간 동안 카페에 머물렀다. <데미안>을 읽고 있을 때 주문한 에그빵과 카페의 시그니처메뉴인 마핑고커피가 나왔다. 


매일 아침 달걀 100개를 삶아 만든 부드럽고 촉촉한 폭탄 계란빵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였다. 하루 20개 한정판매라는 말도 매력적이었다. 계란빵의 품절여부를 알아보고 가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계란빵이 있을까요? 묻는 걸 잊지 않았던 여자는 품절이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4월을 보낸 여자는 여기저기서 실망할 일만 있다며 툴툴대는 중이었다. 행운이 여자만 비켜가는 것 같았다. 불행이 계속되는 동안, 여자의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 있던 못나고 날카로운 말들이 튀어나왔다. 여자가 살아온 수십 년보다 최근 몇 달 동안 더 많은 욕을 하고 다녔다. 이를 박박 갈며 잠을 잤고, 자다가도 깨어 가슴을 치곤 했다. 


어딜 가고 싶지도, 뭘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살기 위해 먹고, 어쩔 수 없이 잤다. 오늘 여자는 아주 오랜만에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점심 먹자고 말하는 것도 큰 결심을 한 후였다. 친구의 거절에 한번 휘청거렸지만, 여자는 혼자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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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들자 기분 좋아지는 글이 있었다. 여자는 어쩌면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은 음악도 여자의 기분을 돋우는 데 한몫했다. 


프랑스의 작은 카페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여자는 이곳이 마치 그곳 같았다. 알 수 없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을 안고, 여자는 가방 안에 읽고 있던 책을 넣고, 카페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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