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오마이뉴스 기자님께 쪽지를 받았다. "고부갈등이 있는 며느리의 현명한 5월 나기"에 대한 원고를 청탁받았다. 평소 내 글이 안정적이어서 원고청탁을 한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간 나는 브런치와 블로그의 글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실 고부갈등이나 남편이야기는 많았다. 아무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중에 오마이뉴스에 적당한 글을 찾았다.
작년 이맘때쯤 썼던 "시금치는 죄가 없다."라는 글을 여러 번 퇴고하며 다듬었다. 오마이뉴스 기사는 3,000자 정도 쓰는 게 좋은데, 글이 길었다. 기자님이 잘라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보냈다.
며칠 있다 기자님의 전화를 받았다. 글 내용 중에 확인할 게 필요하다고 했다. 글만으로는 의미가 명확하지 못한 것 같았다. 혼자 볼 때는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기사는 실리지 못하나 보다 싶었다.
기사를 보내고 열흘이 지난 오늘, 내가 쓴 제목대신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기사가 나왔다. 기사 옆에는 처음 보는 "오름"이 달려 있었다. "오름"은 원고료가 6만 원이었다. 가장 높은 금액이다. 기분이 좋았다.
오후가 되자 오마이뉴스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댓글이 달렸다. 다른 기사들은 조회수만 높았지 댓글이 없었는데 신기했다. 그런데 댓글이 이상하다.ㅜㅜ
처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단을 시작할 때, 브런치에서 친한 작가님이 말해줬다. 댓글에 상처받지 말라고. 작가님은 이미 시민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이셨다. 내 글에 누가 댓글을 달까 싶었다. 댓글이 달리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기분이 나빴다.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이 갔다. 제목만 보고 화풀이하듯 댓글을 단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용이 며느리입장으로 쓴 글이다 보니 남자들이 화를 냈다.
원래 내 글의 취지는 이랬다. 시댁이 전부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한다. 고부간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금씩 이해하며 살면 된다. 이런 아주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았다. 그랬던 글이 수정을 거치면 변했다. 기자가 원했던 건 '고부갈등이 있는 며느리의 현명한 5월 나기'였고, 제목도 그와 어울리게 달렸다.
사실 처음 내가 쓴 글은 아주 보편적인 내용이었다. 밋밋했다. 수정된 기사는 주제에 맞는 내용만 남기고 군더기기를 걷어내서 깔끔했다. 하나의 글에 하나의 주제를 쓴다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법이 떠올랐다.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온다. 하고 싶은 말을 다 글로 쓰고 싶어서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길 때는 모른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글들이 모이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걸. 욕심이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겠다는 과욕이다. 쓰고 지우고 걷어내도 여전히 내 글은 넘치고 있다.
욕을 바가지로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닭볶음탕이 너무 맛있어서 저녁을 뽕그랗게 먹었다. 밥 먹는 내내 오늘 일을 어떻게 포스팅할까 생각했다. 생각하다 말고 남편 앞에 있는 다 먹은 청양고추를 휴지에 싸는데 갑자기
"왜 다 안 먹은 걸 치우는데?"
"다 먹은 거 아냐?"
"남았잖아."
다시 보니 고추 끝이 한 번 베어 먹을 만하게 남아 있었다.
"다른 거나 똑바로 해. 남 신경 쓰지 말고."
왜 그 말이 그렇게 신경을 거슬렸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하면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돼? 꼭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속이 시원해?"
버럭 화를 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째 냉전 중이다. 오늘은 절대 내가 먼저 말 걸지 않겠다. 오마이뉴스 사건도 절대 말해주지 않을 거다.
그래서 글을 쓴다.
말을 하든 글로 쓰든 뭐라도 해야 잠을 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