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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18. 2024

한 번에 하나씩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


한때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이승철이나 양현석, 박진영 등이 의자에 기대고 앉아 참가자들을 심사하며 공기반소리반이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오디션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 나중에 우승자가 부른 노래들을 찾아 듣기는 했지만, 나란히 선 두 사람이 바들바들 떠는 걸 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웅변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학교대표로 면대회에 나갔고, 면대표로 남제주군대회에서 우승하자, 제주시 초등학생들과 또 경쟁했다. 똑같은 원고를 갖고 4번의 대회에 나가는 동안, 방과 후에 선생님과 고되게 연습했다. 매일 아침 날계란 두 개를 먹었다. 




 처음에는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했던 30대 후반의 남자선생님이 나중에는 이왕이면 제주대표가 되어 보자며 욕심을 드러냈다. 선생님은 내가 말을 조금 더듬거나 머뭇거리면 가차 없이 왼쪽뺨을 잡고 오른쪽 뺨을 때렸다. 30킬로도 안 됐던 나는 커다란 선생님의 손이 무서웠다. 원고를 울면서 외웠다. 팔을 쭉 뻗지 않았다고, 눈동자가 흔들린다고 하며 그만이라고 외치면 나는 오줌이 마려웠다.




대회가 있는 날은 항상 잠을 설쳤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오줌이 마려웠는데, 막상 화장실에 가면 찔끔 나왔다. 웅변대회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는 방광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어디를 가든 화장실위치먼저 살폈다.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어야 안심이 됐다. 




무대에 선다는 건 그런 거다.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는다. 그동안 연습한 것을 완벽하게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단 5분 동안의 웅변을 위해 그 많은 시간들을 연습으로 보냈다. 나는 가장 어린 제주대표로 서울에서 열리는 웅변대회에 참가했다.




오전에 글을 쓰고 난 후,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며칠 운동을 하지 못해서 몸이 찌뿌둥했다. 오르막길이 힘든 코스를 선택해서 걷고 뛰었다. 예전에는 계단을 올라가는 게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 근력이 늘었는지 한걸음에 올라갔다.


별도봉에 올라가는 길


처음 별도봉을 오를 때는 정상을 먼저 봤다. 까마득하게 보였다. 저곳을 언제 갈까. 생각만으로 힘이 빠졌다. 지금은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어느샌가 계단 앞에 서 있다. 다시 걷는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한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게 아니라 끝까지 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하나씩 계속

빨리 올라가는 사람은 빨리 내려온다는 말은 천천히 오르며, 주위를 살펴보라는 말과 통한다. 내가 길을 걷는 이유는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다. 파란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싶어서 걷는다. 걷다 기분 좋아지면 뛰기도 한다. 놀러 나온 강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닌다. 그런 날은 아무리 걸어도 힘이 들지 않는다.








올라가면 내려갈 일만 남는다.



일본의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걸작선에 <첼로연주자 고슈>라는 작품이 있다. 




고슈는 마을에 있는 금성음악단에서 첼로를 켜는 사람이었는데, 연주가 서툴렀다. 다른 동료 악사들 중에서 제일 서툴러서 항상 악장에게 야단을 맞곤 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물레방앗간에서 홀로 살고 있는 고슈는 매일 밤 첼로연습을 한다. 밤마다 찾아와 연주를 부탁하는 고양이와 뻐꾸기, 너구리와 들쥐에게 최선을 다해 첼로연주를 해 준 고슈는 피가 날 만큼 연습하고 마침내 공연날 멋지게 연주를 성공한다. 악장에게 칭찬을 듣고 집에 돌아온 고슈는 자신을 닦달하며, 끝까지 연주를 부탁했던 뻐꾸기를 생각한다.




고슈는 그동안 연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음악과 겉도는 연주를 했고, 악장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야단을 쳤다. 한밤중에 고슈를 찾아온 동물들은 달랐다. 도레미를 정확하게 노래하고 싶어서 고슈를 찾아온 뻐꾸기는 고슈가 조금만 틀리게 연주해도 바로 지적했다.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고슈에게 뻐꾸기가 말했다.




"왜 그만두시는 거죠? 우리 뻐꾸기들은 아무리 오기가 없는 녀석이라도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소리치는데요."




뭔가를 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절로 따라온다. 바꿔  말하면 결과가 없다는 건 부족하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완벽할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만하면 됐다고 한계를 짓는 순간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뭘 하든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해야 한다. 정말 하고 싶은 거라면.




별도봉을 오르며 첼로 켜는 고슈와 웅변대회에 나갔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했다. 눈물을 닦으며 치열하게 노력한 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건 별도의 문제다. 이것 역시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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