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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17. 2024

넥플릭스 영화 <바람>을 보고 난 후

어른이 된다는 건 그리워할 게 생긴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강연 요청을 받는 스토링텔러의 대가 로버트 맥키의 책 <STORY>의 서론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원형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면을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는 표현으로 감싼다. 


 이야기에서 어떤 원형을 발견해 내기만 한다면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원형적인 이야기는 그 상황과 인물들을 아주 희귀하게 설정해서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사항들로부터 도저히 누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한편,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 너무나 진실하게 와닿는 갈등을 풀어내기 때문에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문화와 환경, 기질이 전혀 다른 지역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일반적이면서도 독특하고, 전형적인 구성 같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는 표현하는 수단에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인데, 그것을 개성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만에 남편과 넥플릭스 영화를 봤다. 나는 봤지만, 남편은 보지 않았던 옛날 영화였다. 유튜브에서 밈으로 자꾸 봐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봐도 감동이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영화나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건 나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영화를 봤다.


 https://blog.naver.com/baemisuk100/220615544297

영화 <바람>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 짱구(이정우)는 엄격한 아버지와 성실한 어머니, 무섭지만 모범생인 형과 자상하고 따뜻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속이 깊고 공부를 잘하는 형제들과는 달리 부산에서 악명 높은 실업고에 진학하게 된 짱구는 어찌어찌하다 불량서클에 가입하게 된다. 짝다리를 질고, 담배를 피우고, 반아이들을 이유 없이 때리면서 그게 폼나는 일이라고 믿고 살았다. 그런 짱구에게 서클선배들은 하늘과 같이 크고 웅장해 보였다. 



영화 <바람>은 짱구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남자라면 꼭 봐야 한다며 남편에게 추천해 줬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보던 남편이 어느샌가 핸드폰게임을 멈추고 영화에 집중하는 걸 보니, 영화를 보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지트처럼 드나들던 커피숍, 삐삐를 치고, 호출하신 분이라는 말을 기다리는 시간, 아무것도 없으면서 괜히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리지만, 사실은 겁나고, 떨리는 고등학생의 모습들을 전혀 고등학생 같지 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1년 선배가 정말 어려웠다. 성숙하고 어른 같았다. 졸업하고 보면 나와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영화 <바람>에서 짱구의 독백을 들으며 옛날 생각이 났다. 남고를 다닌 적은 물론 없지만, 그래서 낯설고 신기한 장면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는 말과 행동들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모리사와 아키오는 <프로만 알고 있는 소설 쓰는 법>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본은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라고 했다. 이런이런 주인공이 이런 문제를 극복해서 이런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큰 틀을 놓고, 그 안에 생각나는 대로 구체적인 살붙이 기를 하며 플롯을 점점 늘려나가면 소설이 완성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영화 <바람>을 모티브로 써 본다.


             폼나게 살고 싶었던 남학생이           

불량서클에 들어가 활동하며, 선생님과 부모님의     속을 썩이다가            

고3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틀을 만들어놓고, 이야기 사이사이에 신을 집어넣는다. 폼나게 살고 싶었던 남학생이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불량서클은 어떤 모습이고, 짱구가 말썽 피우는 장면은 몇 개 정도 넣을지,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죽음으로 바뀌는 짱구의 심리변화를 에피소드로 집어넣는다. 철없는 남학생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 된다.




https://blog.naver.com/bluegreen2023/220421064963


내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건 짱구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였다.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몰랐고, 미루면서 타이밍을 놓친다. 할 수 있을 때, 말할 기회가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그때 나는 용기가 없었다."라는 짱구의 독백이 가슴을 찌른다. 영원한 것만 같던 시절이 흘러간다. 늙지 않는 부모, 울타리처럼 든든한 집이 흔들린다. 마냥 어리광을 피워도 등짝 한 대 맞고 끝나던 때가 그리워질 때쯤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사족: 영화를 보면서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을 읽으며 또 소설쓰는 걸 생각하는데 왜 소설은 못 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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