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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n 09. 2024

핸드폰이 두 개가 됐다.

AI가 당신의 핸드폰으로.

광고문구처럼 핸드폰 안에 모든 것이 있는 디지컬 세상이다. 우스갯소리로 딱 2년 쓰게 만들어놓고, 바꾸게 만든다는 말을 누군가 했다. 별로 급한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지만 핸드폰을 자꾸 보게 된다. 남편과 식당에 가면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핸드폰을 본다. 게임을 즐기는 남편은 종일 핸드폰만 볼 때도 있다. 편리하고 재미있지만, 상대의 눈을 보지 못하게 된 게 핸드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핸드폰을 잘 보지 않느냐? 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 있는 시간에 유튜브 쇼츠를 보는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이 훌쩍 사라진다. 짧은 영상이라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내력은 재미를 이기지 못한다. 

  

 집에 있을 때는 음소거로 해 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있을 때 알람 소리에 신경 쓰게 된다. 딱히 중요하게 올 전화도 없다. 어떤 날은 통화한 사람이 남편과 아이들 뿐일 때도 있다. 신경 쓸 사람도 일도 만들지 않는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 핸드폰이 두 개가 됐다.


원래 나는 지플립 3을 쓰고 있었다. 3년 전 생일에 맞춰 남편이 바꿔줬다. 기계치에 아날로그 인간인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얼리어답터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꼭 써보고 싶어 한다. 남편이 종일 핸드폰을 보는 것도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남편이 보여주면 슬쩍 보고 좋다고 말한다. 남편이 주문한다. 내가 받아서 쓴다. 결혼 21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공생해 왔다.

 

 지플립 3은 순전히 예뻐서 샀다. 작고 앙증맞은 핸드폰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가로줄이 생기기 전까지. 아들이 몇 번 떨어뜨렸고, 가로줄이 생겼으며, 처음에는 보험으로 수리했는데, 두 번째는 40만 원을 주고 수리해서 다음에 고장 나면 교체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다시 줄이 생겼다. 핸드폰을 열 때마다 줄이 갔던 필름이 점점 면적을 넓혀갔다. 느낌이 싸했다. 

 

 8월에 놀러 갈 계획을 짠 우리 부부는 두 달 동안 긴축재정을 하기로 했다. 버텨야 했다. 핸드폰을 열고 닫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핸드폰 눈치를 보며 살았다. 참지 못한 내가 *성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필름교체를 요구했는데, 수리 기사가 안 된다고 했다. 필름이 문제가 아니라 액정이 파손됐다며, 지금 상황에서 필름을 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수리비가 40만 원이었다. 필름을 뗐다가 다시 부탁하려고 기계를 쓰면 완전히 나간다는 말을 보탰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일단 핸드폰을 덮지 말고 며칠 버티라고 했다. 너는 핸드폰이 없으면 하루도 안 된다며 서둘러 검색에 들어갔다. 서비스센터에 다녀온 지 하루 만에 남편은 S24플러스 자급제폰을 구입했다. 그리고 토요일에 핸드폰이 도착했다.

 

 자급제폰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유심을 꺼내 교체하고 핸드폰을 연동시키는 남편이 오랜만에 멋있어 보였다. 오빠, 완전 서비스센터 직원 같아. 멋있다. 뭐래. 하는 표정을 지으면 심각하게 핸드폰을 보던 남편이 필름 붙이러 서비스센터에 가자고 했다. 

 

 아직 연동이 끝나지 않아서 핸드폰 두 개를 들고 갔다. 필름은 24,000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플립 3을 보여주며, 혹시 이것도 필름교체가능할까요?라고 물었다. 


  직원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심히 보더니 된다고 했다. 된다고요? 액정이 나갔다고 하던데요.

필름교체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해 주세요. 16,000원입니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지플립 3은 말끔하게 변해 내 손에 들어왔다. 지난주에 필름교체하러 왔을 때 다른 직원분이 액정이 나갔다고 해서 지금 새 폰을 구입했어요. 그런데 필름교체하면 되는 거였네요. 참지 못하고 말했더니 직원분이 약간 당황했다. 그분이 어떤 부분을 보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황당했다. 16,000원으로 필름만 교체하면 될 일이었다니. 


그런데 왜 나는 새 폰을 샀을까?

1. 서비스센터 직원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나보다 잘 아는 전문 가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는 필름만 나간 것 같아 보여도 전문가의 눈에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원이 약정이 나갔다고 핸드폰이 지금 위험한 상태라 언제든 꺼질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2.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톡을 보낼 때마다 오타가 생기고, 잘 눌러지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유튜브를 보다 저절로 끊겼다. 2년 만에 바꾸게 만들었다는데 나는 3년이나 썼으니 오래 썼다. 지금 바꿔도 이상한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교체를 부추겼다.


 말없이 게임을 하던 남편이 핸드폰 괜히 바꿨잖아.라고 툭 내뱉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핸드폰게임용 노트 9의 배터리를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다. 60,000원이었다. 지하상가에 가서 케이스를 샀다. 남편이 자기 거도 사 달라고 했다. 25,000원이었다. 나는 졸지에 필름값 24,000+16,000, 과 케이스 16,000+25,000, 배터리 60,000원을 결제했다. 하루에 30,000원씩만 쓴다고 다짐한 지 이틀만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핸드폰 두 개가 놓여있다. 필름을 바꾸면서 깨끗하게 단장한 지플립 3과 새것 특유의 도도함과 깔끔한을 자랑하는 S24플러스. 볼 때마다 속상하다. 지플립을 당근에 올리고 싶지만, 전에 떨어질 때 뒷면에 금이 갔고, 가운데 부분에 충격을 가한 흔적이 선명해서 누가 살 것 같지도 않다. 


 고민 끝에 지플립은 집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기로 했다. 익숙하기도 하고, 사진이 더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핸드폰 하나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내가 졸지에 두 개를 들고 다니게 됐다. 쓰기 위해 샀는데, 물건에게 눌리는 기분이다. 필요한 것만 갖고 가볍게 살고 싶은데, 자꾸 산다. 


다른 사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의 말에 흔들릴 때가 있다. 아이가 아파서 간 병원 의사선생님의 말, 미용실 원장님이 나에게 어울리겠다고 권하는 머리 모양, 자신이 하는 일을 말하며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다가오는 사람의 말을 듣고 혹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남편은 그런 날 보며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하게 된다. 한 사람말만 믿고 가지 못 한다. 일이 생겼을 때 여러 사람에게 묻는 건 확심이 없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글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꾸 망설이게 된다. 묻고 떠불로 가. 를 외칠 배짱도 용기도 없다. 그러면서 일이 벌어지면 궁시렁대기는 또 잘 한다. 뭘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마음에 산더미같은 생각을 쌓아 놓고 사는데 움직이는 건 거북이 걸음이다. 꿈과 현실사이가 멀다.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하고, 일단 했으면 후회하지 말자고 생각하는데도 잘 안 된다. 디게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밴댕이 소갈딱지같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먹고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사람. -정이현의 단편소설 (언니 中)-

 소설을 읽다 말고, 누군가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뭐라고 할까 궁금해졌다. 아니다. 먼저 내가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게 우선이다. 한동안 하고 싶은 것 대신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이제 내게 나만의 시간을 조금 나눠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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