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운동화는 걷는 피로를 덜해준다. 가볍고 쿠션이 좋은 운동화를 신고 걷거나 달린다. 그러다 마트에 가서 시장을 보고,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운동화를 신으면 어디든 나가고 싶어 진다.
나는 구두를 좋아한다. 다리가 짧고 유독 종아리가 조선 무다리인 나는 높은 굽의 구두를 좋아한다. 구두를 신으면 몸이 쑥 올라간다. 공기가 달라진다. 잘 빠진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는다. 천천히 가슴을 펴고 걷는다. 구두를 신으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진다.
작년에 산 59,000원짜리 나이키 운동화를 주구장창 신었다. 살 때는 딱 맞았는데, 신으면서 사이즈가 커졌는지 뒤축이 헐렁해졌다. 운동화지만 3cm의 통굽이고, 디자인이 예뻤다. 원피스나 스커트에도 잘 어울렸다. 언제부턴가 운동화의 뒤가 헐기 시작하더니 안에 있던 충전재가 삐져나왔다. 신었을 때는 안 보였는데, 신발을 벗으면 선명하게 보였다. 신을 때는 예쁜데, 혼자 있을 때는 초라한 신발이었다.
여름 샌들이 필요했다. 여름에는 주로 통굽 샌들을 신는데, 이 년 정도 신고 버린다. 싸고 예쁘고 편한 신발을 산다. 여름 내내 신는다. 미련 없이 버린다의 반복이었다. 올해 초에 신발장을 정리하며, 색이 바랜 하얀 샌들과 뒤축이 닳은 통굽샌들을 버렸다. 갑자기 날이 더워졌다. 샌들이 필요했다.
신발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산다. 옷은 웬만하면 온라인에서 사도 실패하지 않는데, 온라인에서 주문한 신발은 계속 실패했다. 235 사이즈를 주문하면 작거나 딱 맞았다. 240을 주문하면 크거나 딱 맞았다. 내 발은 235와 240의 어디쯤이었고, 아침용 발과 저녁용 발의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발을 집어넣는 순간 느낌이 온다. 이 신발은 좋다. 아니다.라는
물론 비싼 신발은 좋다. 예전에 면세점에서 신어봤던 토즈구두의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기억한다. 하지만 한 번에 덜컥 사기엔 가격이 높았다. 언젠가 좋은 자리에 갈 때 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를 위해 구두살 돈을 조금씩 매일 모으고 있다.
여름에 입을 청바지가 필요해서 옷가게를 돌다가 예쁜 구두를 발견했다. 사실 옷가게에 가기 전에 슈마커와 ABC마트에서 여름샌들을 구경하고 신어봤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지 못했다. 온라인에서 사야 하나. 혼잣말을 하며, 청바지를 고르고 있었는데, 가게 중앙에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충동구매를 잘한다. 지하상가를 걸어 다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산다. 그렇게 야금야금 쓰는 돈이 꽤 됐었다. 조절과 계획은 내 사전에 없었다. 혼자 살 때는 그게 가능했는데,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자꾸 일이 생겼고, 비상금이 필요했다. 돈을 끌어다 쓰면 정작 필요할 때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은 딱 살 것만 사려고 한다. 청바지를 사러 왔으면 청바지만 산다. 그래서 구두는 어떻게 했을까?
다음 날, 구두를 사러 갔다. 그날은 구두 사는 데만 돈을 썼다. 어제 같이 산 것과 뭐가 다르냐고 하면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하루에 쓸 금액을 정해놓았는데, 그 선에서 맞췄기 때문이다. 검은색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가죽은 아닌데 가죽 같은 5cm 통굽구두를 신고, 새로 산 청바지를 입었다. 허리를 펴고, 전방을 주시하며 걷는다. 기분이 좋았다.
오프라인에서 신어보고 샀지만, 구두는 편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굽이 높은 신발을 신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10cm 하이힐을 신고 별도봉도 올랐던 나였는데, 지금은 구두가 불편하다. 차로 이동할 때만 신기로 했다. 행동범위가 좁아졌다. 그래도 좋았다. 혼자 있어도 예쁜 구두였다.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살짝 불편한 건 나만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신을 때는 몰랐는데, 신지 않아 방치했더니 나이키운동화가 갑자기 초라해졌다. 버려야 하는데 미안하고 섭섭했다. 며칠 잘 달래서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