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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24. 2024

새옹지마


종량제 봉투 두 개를 들고 집에서 나와 클린 하우스로 향했다. 30미터 정도의 길을 가는 동안 맞은편에서 유모차를 끌고 오는 할머니와 세탁소 주인아주머니께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담배꽁초 10개를 주워 종량제봉투에 넣었다. 나의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에서 오타니는 8 구단 드래프트 1순위에 들기 위해 꼭 필요한 8가지에 '운'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운을 불러들이는 행동으로 쓰레기 줍기와 부실청소라고 적어놓았다.




오타니의 만다라트를 알게 된 후부터 버릇이 생겼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속상할 때면 밖에 나가 쓰레기를 주웠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는 그보다 더 간절하게 노력해야 한다.




 수요일 저녁 6시 30분에 아들이 다니는 유도장 관장님의 전화가 왔다. 오이를 씻다 말고, 앞치마에 손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받을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유도학원에 다니는 10개월 동안 한 번도 이 시간에 관장님이 전화한 적이 없었다.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말이다.




관장님은 아들이 경기도중 다쳐서 병원응급실에 가고 있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 가냐고 묻고, 전화를 끊었다. 시금치를 데치려고 끓이고 있던 냄비의 불을 끄고, 남편을 불렀다. 10살 막둥이에게 언니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라고 했다. 학원이 끝나서 걸어오고 있을 큰 딸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말하고, 빨리 집에 와서 막둥이와 있으라고 했다.




응급실을 가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눈물 많고, 겁은 더 많은 12살 아들이 눈에 보였다. 무서운 관장님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잔뜩 긴장해 있을 게 뻔했다. 병원에 도착할 즈음 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에 대기환자가 너무 많아서 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거였다. 통화하는 중에 병원에 도착했고, 관장님께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했다.


제주대학교 응급실까지 가는 내내 아들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관장님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고 하는데, 내가 먼저 울어서 그런지 아들의 눈물이 터졌다. 유도허리띠로 팔을 동여맨 걸 보자 너무 속상했다. 제주대학교 병원에 도착했지만, 정형외과 선생님이 없다는 말에 다시 S중앙병원으로 갔다.


세 군데 병원을 돌고 나서야 아들은 겨우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X레이를 찍었는데, 선명하게 보였다. 떨어져 나온 뼈가.




다음 날 아침 일찍 S중앙병원에 가서, 1시간 30분을 기다려 정형외과 선생님을 만났다. CT를 찍었는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서 소아정형외과 잘하는 곳을 찾았다. 한국병원을 추천한 사람이 제일 많았다. X레이와 CT 찍은 걸 CD에 넣어달라고 해서, 한국병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 한국병원 근처에 사는 큰 형님께 전화해서 접수를 부탁했다. 형님은 세수도 하지 않고 접수하러 달려갔지만, 오전 접수는 이미 끝났고, 오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그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1시까지 쉬다 한국병원으로 갔다.




1시에 도착해서 3시에 진료를 받았다. CD를 본 선생님도 S중앙병원 선생님과 똑같이 한숨을 쉬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주 월요일 입원해서 화요일에 수술하기로 하고, 피검사와 심전도검사, 폐검사와 소변검사, X레이를 찍고, 집에 돌아오니 5시였다.




아들은 유도를 좋아한다. 4학년 2학기때부터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제법 잘 따라갔다. 얼마 안 있으면 검은 띠를 딴다고 좋아했었는데, 일이 생겼다. 관장님과 통화하는데, 그날 CCTV를 돌려보니 아들이 왼손을 짚었다고 한다. 낙법을 배웠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가 없었는데 왜 그날은 어깨로 떨어지지 않고, 손을 짚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아들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황했나. 상대의 기습공격에 지금까지 배운 거 다 잊어버릴 만큼. 아직 몸에 완전히 익지 않은 상태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다치면 정말 곤란하다.




아들은 6월 1일 학교친구 5명과 함께 창의력대회에 참가한다. 두 달 전부터 매주 수요일에 1시간, 일요일에 3시간씩 모여 연습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있다. 대회가 고작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팔수술이라니. 난감했다.




남편은 대회가 문제냐고 하지만,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혼자 나가는 대회라면 간단하게 포기할 수 있지만, 이건 단체전이다. 아들의 몫이 있고, 그동안 노력한 친구들이 있다. 아들이 포기하면, 5명에게 피해가 간다. 엄마들과 친구들은 괜찮다며, 몸조리에 신경 쓰라고 말하지만, 속상한 건 사실이다.




아들을 빼고, 5명만 나가라고 할까? 수술하고 통깁스한 채 퇴원한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대회에 내보낸다는 게 옳은 걸까? 전신마취를 한다는 데 혹시 달달 외운 대본을 까먹기라도 하면 어쩌지?




낚싯바늘 같은 물음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이번 주 일요일 연습에서 아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동작보다 대사로 표현하는 것이 많고, 즉석과제 때는 팀워크를 본다고 하니,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한데, 6명이 똑같이 균형을 맞춰야 할 때 아들이 흔들릴까 걱정이다.




요즘 '보왕삼매론'을 읽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감사일기를 쓰다 말았는데, 혹시 그래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한 고비 넘었다고 숨을 고르는데, 또 한 고개가 나타나는 꼴이다.




언젠가 끝이 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데 하느님이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세 군데의 응급실을 돌고 집에 왔는데, 대문 앞에 소포가 와 있었다. 인스타이웃이 보낸 선물이었다. 예쁜 포장지안에 내가 좋아하는 책이 두 권 들어 있었다. 생각지 못했는데,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또 살아갈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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