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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n 23. 2024

 작심삼일이라도 좋아요

어제 6시 이후에 금식한다고 가족들 앞에서 선포했다. 누구는 응원하고 누구는 코웃음을 쳤다. 하루 성공하고 우쭐해진 나는 오늘도 성공한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5시에 산책을 나가서 1시간 30분 만에 집에 돌아오고 나서 아이들을 씻기고 그 와중에 밥을 하고, 빨래를 돌리고 치킨 주문을 하고 김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면서 엄청난 갈등에 시달렸다. 진로소주와 테라맥주를 사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 정도는 먹어도 된다. 주말 동안 힘들었는데 이 정도의 사치는 부려도 된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아주 불안전하고 유혹에 약한 고작 인간일 뿐이다.

 푸라닭에서 매운 치킨과 알리오올레오, 후리이드치킨 반반을 주문했다. 남편카드를 들고 집을 나서는 나는 당당하다. 킹마트에 들러 조미김을 사고 진로소주와 테라맥주를 샀다. 6시 이후에 금식하기로 했지만 계획이란 어긋나야 맛이고, 주말은 원래 약간 흐트러지는 것이다.

 푸라닭의 검은 가방을 들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나는 치킨보다 한 발짝 뒤에 있었다. 괜찮다. 진로소주와 테라맥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남편에게 병맥주를 따달라고 부탁한다. 남편은 숟가락으로 병맥주의 뚜껑을 딴다. 언제 들어도 상쾌한 소리다. 지렛대의 원리를 아직도 모르는 나는 병따개대신 남편을 부른다. 술을 못 마시는 남편이 내가 마실 주의 뚜껑을 기꺼이 따줄 때 진실한 사랑을 느낀다.

 푸라닭은 주문할 때마다 가격이 오른다. 6월의 어느 일요일은 덥고 습하며 바이올린 연습을 30분 한 큰 딸이 자랑스럽게 다가와 연습이 끝났다고 말하면 나는 3,000원을 꺼낸다. 우리 집의 규칙이다. 30분 악기연습하면 3,000의 용돈이 생긴다.

 큰 딸이 엄마는 왜 술을 마시냐고 묻는다. 아들이 8월까지는 술을 안 마신다고 했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아이들은 모른다. 모든 약속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혼자 지키기엔 버거워 새끼손가락을 걸지만 결국 손가락이 잘릴 줄 알면서도 약속은 깨진다. 나는 어른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왜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참 많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게 어른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는다. 내가  웃는 것은 술이 위해서다 아니다. 우는 것보다 웃는 게 그나마 낫기 때문에 웃는다. 웃어서 생긴 주름은 보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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