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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n 06. 2024

소설가의 귓속말

문학은 기대하지 않은 채로 기대된다


<소설가의 귓속말>은 소설가 이승우의 문학 에세이다.  40년간 소설가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내밀하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가장 사적이면서 은밀하고, 일상적이면서 일반적인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제목이 <소설가의 귓속말>인 이유가 납득된다.



이승우는 본문에서 소설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기 이전에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전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귓속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소설가라면, 독자는 소설가가 들려주는 귓속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귓속말은 은밀하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말이라도 귓속말로 들으면 무겁고 중하게 느껴진다. 혼자만 들었다는 점에서 귓속말은 중요하고 은밀한 비밀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책을 읽었지만, 마치 내게 하는 말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 얘기 같고, 내 친구얘기 같은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존재할 때 이야기는 실감 나게 다가오고 소설에 깊이 빠져든다.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작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꾸준히 쓰라고 말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쓰라고 한다.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당장 그 앞에서는 말을 못 하고 돌아서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당하고 잘못된 일인데 지금 당장 말할 수 없을 때, 구시렁구시렁, 씨발씨발거린다. 



  남편이 되고, 시어머니가 되고 또 나로 돌아와서 말을 주고받는다. 소설은 어떤가? 소설가는 소설 속에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어조와 억양과 말투를 부여한다. 마치 일인극을 하듯 현란하게 역할을 오가며 연기한다. 혼자서 일당백의 연기를 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해 볼 만하다. 나는 혼잣말을 자주 잘한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고 그러나 표현되고자 하며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 나에게 소설은 그러하다. -본문 중-



사람이 사람에 대해 하는 모든 말은 결국 자기에 대한 것이다.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말해지는 것은 타인이 누구인지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이다. 타인의 삶이, 전달하는 사람에 의해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본문 중-




온전한 진실은 그가 어떤 행위를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동기로 그 행위를 했느냐를 통해 드러난다. 인간은 배신의 마음을 품고 키스할 수 있고 꽃다발을 바치며 저주할 수 있다. -본문 중-



소설가 이승우가 귓속말로 소설에 대해 말한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귀에 속삭인다.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 책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댄다. 



 책이 말한다. 소설에 대해, 소설가에 대해. 귓속말이 끝나자 긴장이 풀렸다. 여전히 소설은 어렵지만, 하나는 알았다. 소설은 내 이야기를 내가 아닌 척 쓰는 것이다. 뭐가 뭔지 모르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쓴다. 아프고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소설을 쓴다. 쓰면서 나를 너를 우리를 알아간다. 소설가는 외롭고 힘들지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함으로 글을 쓴다. 강요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투정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래도 글로 쓸 수 없다. 당연하다. 최대한 가깝게 써 내려가길 바랄 뿐이다. 쓰고 또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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