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언쟁을 벌여서 지금은 어색하게 된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내가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다며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냐고 물었다. 직설적이고 다혈적인 성격인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오니 나도 솔직하게 답했다.
내가 인사를 안 받은 건 아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인사하는 걸 못 봤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나 그때 네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 말을 하다 보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십 년 넘게 나를 언니라고 부르던 네가 그렇게 쥐 잡듯이 나를 몰아세우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속이 상했다.
후배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중에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언니처럼 차분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두서없이 팍팍 나간다. 그게 내 단점이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좋은 말을 해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후배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화가 나면 숨을 몰아세우며 스스로를 밑으로 잡아당긴다. 앞으로 뻗어가지 않고 안으로 삭힌다. 상대하기 싫어서 혹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렇게 돌아서고 나면 열불 나는 속을 삭힌다. 하지 못한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혼자만 아는 쌍욕을 날린다. 그래도 풀리지 않은 날이면 꿈자리가 사납다. 나는 하나도 우아하지 않으면서 우아한 척하고, 고상하지 않으면서 고상한 글을 쓴다. 속에서는 온갖 욕이 날아다니고 미움과 원망, 불안과 부러움, 시기 질투와 욕망으로 꽉 차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척한다.
언니처럼 차분하지 못해서. 언니처럼 부드럽게 말하지 못해서.
나도 막 싸지르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어린 아리가 마트바닥에서 뒹굴며 생떼 부리듯 내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 쌈닭같은 사람을 만나면 다음 생엔 내가 아닌 그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번 생의 나는 그저 동경하고 꿈꾸는 역할인 것 같다.